`한글' 선택의 문제인가?

김현종 · 2026-05-28 · 칼럼

`한글' 선택의 문제인가?

최근 광화문 복원과 더불어 한글현판에 대한 논의가 한참이었다. 지난 40년간 걸려 왔던 한글현판에 대한 지속성과, 한자현판에 대한 복원은 많은 논쟁을 부르고 말았다. 이러한 논란은 사회적 합의와 한글세대의 대의명분을 뒤로 한 채 한자현판이 역사성의 복원이란 측면에서 정치적 힘을 얻게 되었고, 마침내 서울시내 한 복판에 원본이 아닌 짝퉁 한자현판을 걸고 말았다. 광화문의 현대적인 의미와 세종로, 세종대왕 동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난 40년간 한글현판이 당당히 걸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시대적 과제는 한자가 해법이었던 것 같다.

광화문 논쟁은 마치 한글과 한자의 언어적 갈등구조로 보여 지기도 하는데, 한자를 주장하면, 사대주의를 표방하는 것 같고, 한글만을 강조하면, 한자에 대한 역사적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국수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듯하다. 우리는 한글과 한자현판에 대한 논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역사적 관점에서 한글과 한자의 상징적 관계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한학을 깨우치기 힘든 민중을 위해 만든 순수 우리글이다. 그래서 한글은 배고프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문자였다. 이 후 한글의 과학성과 효용성이 증명 되면서 보급이 활성화 되고 활용도 또한 높아 졌지만, 여전히 공적인 문서나 표기에는 어려운 말과 한자가 통용되고 있다. 그래서 한자는 높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중국 사대주의 문자라는 인식이 강하고, 한글은 과학적 독창성을 가진 우리 민중의 표상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자와 한글관계는 대립적이다.

일반적으로 사대주의는 자신의 주체성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나 사람을 섬기는 태도를 말한다. 그래서 특정 사회의 문화만이 가장 좋은 것으로 믿고, 그것을 동경하고 자기의 문화나 전통을 업신여기고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자기 문화 중심주의는 자기 나라의 고유한 역사·전통·정치·문화만을 가장 뛰어난 것으로 믿고, 다른 나라나 민족을 배척하는 극단적인 태도나 경향을 의미한다. 한글에 대한 지나친 자긍심은 한자와 상호 보완하는 관계를 부정하는 한글 발전의 저해요소로 나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에서 사대주의가 주는 교훈은,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 속에 담겨있는 유익한 것을 우리 정서와 상황에 맞게 취사선택하여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수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은 광적인 집착이 아니라, 자기문화와 역사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사고가 생길 수 있다. 수용 할 수 있는 국수주의는 애국심이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의미한다. 적절한 수용과 교류 그리고 한글에 대한 광적인 애착이 아니라 적절한 사랑과 자부심이 조화 될 때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진보와 발전은 일방적인 방향의 전진이 아니라 정과 반의 소통을 통한 재창출의 의미이고, 서로 배타적이고 대립적인 설정이 아니라 화해하고 소통하는 관계이다.

언어적인 관점에서 둘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한자는 표의 문자(뜻글자)로서 한 글자 안에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바로 듣고 이해가 되는 문자가 아니다. 즉 하나의 글자에 담겨있는 뜻을 이해해야, 그 문장이나 단어가 가진 전체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반대로 한글은 표음문자(소리글자)로서 소리가 나는 대로 이해가 되는 것이다. 즉 설명 할 수 있는 글이어서 이해가 쉽다. 따라서 한자와 한글은 근본적으로 태생이 다르며,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한글 자체가 우수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자의 다의 적인 단어들을 도용함으로서 더욱 완벽한 언어로 구성되며, 표현에 있어서도 적절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한글과 한자는 언어적 관계에서 갈등과 대립의 구조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라고 볼 수 있다.

한자와 한글의 관계를 정치적, 역사적, 혹은 언어적 갈등 관계로 설정한다면, 사실 이것에 대한 해답은 없다. 이런 식의 소모성 논쟁은 국론을 분열하고 국민의 문화적 정서를 해치는 짓이다. 이번처럼 섣부른 판단보다는 국민의 정서와 의견이 가장 맞아떨어지는 상황과 대안이 선택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 한글과 한자가 소통한다는 측면에서 광화문 방향으로는 한글현판을, 경복궁 방향으로는 한자 현판으로 걸 수도 있을 것이다. 광화문 밖의 세종로와 세종대왕 동상은 대한민국 서울의 상징이면서 현 시대의 정신적 주소이다. 반면에 경복궁 방향으로는 과거의 역사와 조선의 유교문화의 근간을 보여주는 전통의 공간이다. 이러한 곳에는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한자 현판을 달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대한민국 기자들이 드나드는 청와대의 춘추관 현판은 한글로 되어있다. 또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연변(조선족 자치구)은 중국 땅 임에도 불구하고 관공서부터 시작하여 시내의 거의 모든 간판이 한글로 되어있다. 한글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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