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 얼굴을 기다리며....

김현종 · 2026-05-28 · 칼럼

큰 바위 얼굴을 기다리며....

지역의 발전과 미래를 위한 인재를 가려내는 것은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는 그 시대에 걸 맞는 인재가 등장한다고 말하고 있고 우리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시대는 우리사회에 적절한 정신력과 독특한 리더십을 가진 인재를 원한다. 유교사회의 성인군자가 글로벌 시대에 인재가 될 수 없듯이 시대를 거스르는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하나의 사상과 철학, 종교가 지배 할 수 없는 다원적 구조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매트릭스(Matrix)가 서로 공존하고 있으며, 구조적 상황에 따라 선과 악에 대한 진실의 개념도 모호하고, 그 평가도 지속적으로 변화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매트릭스 시대정신에 걸 맞는 인재는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나다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을 기억하고 있다. 소년 어니스트는 큰 바위에 대한 전설을 듣고 항상 겸손하고 진실하게 그 얼굴의 주인공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하며 부단히 노력하던 소년 어니스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큰 바위 얼굴로 성장해가는 스토리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현실적 인물과 기다리는 인물이 어니스트로 동일시 되어가는 과정에서 이 소설은 이상적인 미래의 지도자를 제시한다. 그의 기다림은 듬직한 바위에 비유되고, 강력한 미래형 리더를 상징한다. 소설에 등장했던 정치인도, 돈 많은 재력가도 그 시대에 필요한 인물이 되지 못했다. 어니스트는 주류에 종속되어 생명력을 연장하는 정치인도 아니고, 자본의 힘을 자랑하는 재력가도, 보수와 진보를 갈등하는 계파도 아닌, 탈 구조적인 자유인이다. 그렇다고 기성사회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사람도 아닌 평범한 소시민이다. 어니스트는 시대적 정신과 역사적 소명을 통해서 기존의 매트릭스와 이상의 매트릭스를 넘나들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현대사회의 구조적 한계에 대한 탈출구를 제시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현대사회는 거대하고 복잡한 권력과 자본의 매트릭스로 구성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힘과 권력으로 탄탄하게 구성된 매트릭스는 권력과 자본을 가진 통치자를 위해서 작동하고 있으며, 그 속에 살고 있는 소시민들은 구조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 구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게 되어있다. 어쩌면 매트릭스라는 권력과 자본에 이용당한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관성화 된 시스템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무지 때문에 대다수가 문제의 고민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선 누구나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대기업에 취업을 해야 하고, 경제활동을 통해서 세금을 납부하고, 그 세금은 다수의 누군가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권력과 자본에 기인하는 사회에 대부분 동의해야 한다. 만약 대다수가 학교에 가지 않거나,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 사회가 가지는 구조적인 통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그 사실은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행위이다. 자의든 타의든 다시 학교에 나갈 것을 강요받고,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식의 지배를 받는다. 구조적 틀을 벗어나려는 것은 위험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생각한다. 매트릭스를 벗어난다는 것은 다른 외부와 새로운 가능성을 소통 하는 것이지 우리 세상을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부적절하다고 말하는 것은 권력과 자본에 의존하는 기존의 매트릭스가 무너질까 고민하는 기성세력의 사회 통념이다.

과거의 지도자가 소통이 부재하고, 가식적인 이벤트가 극대화된 할리우드식 영화라면, 우리의 이상적 지도자는 연극과 같이 관객과 소통을 바라는 사람일 것이다. 연극이 영화와 다른 점은 관객들의 이해를 통해서 연극 속의 현실과 관객의 현실을 소통시키는 것이다. 즉, 시나리오 속에 있는 답답함을 관중의 참여와, 웃음과 울음을 통해서 정화시키고, 극중 시나리오와 현실을 넘나들며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연극의 묘미이다. 영화 속에는 이러한 소통이나 정화장치, 카타르시스가 없다. 어니스트가 기다렸던 큰 바위얼굴처럼, 새 지도자는 현실의 매트릭스에서 이상적 매트릭스로 넘나들며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새로운 방향성을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너무나 익숙해진 할리우드식 전시행정과 이벤트를 버리고, 새로운 구조적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소통하는 진정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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