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이제 ‘국가 속의 국가’로 다시 설계할 때다
김현종 · 2026-05-28 · 칼럼
대한민국은 오래전부터 지역균형발전을 국가 도약의 핵심 전략으로 삼아왔다.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도 모든 후보는 전국 어디서나 지역 균형발전이 가능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내세웠고, 상생과 조화의 가치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행정 시스템은 여전히 미온적이며, 오늘날의 변화된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 집중적인 재정 구조와 권한이 분산된 지역 행정, 수직적인 예산 배분 구조, 그리고 경직된 규제 체계는 지역 혁신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새만금은 이러한 문제의 대표적인 사례다. 30년 넘게 ‘동북아 경제 중심지’라는 타이틀이 부여되어 왔지만, 지금까지도 계획도시로만 남아 있다. 행정 책임은 분산되어 있으며, 민간과 외국 자본은 행정과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적극적인 투자를 꺼리고 있다.
현행 체계로는 변화가 어렵다. 창조는 기존 질서의 해체를 수반한다. 새만금은 이제 대한민국 내의 하나의 ‘국가 속 국가’, 곧 ‘규제 없는 자유경제지대’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기존 시·군 행정 체계를 넘어서는 대통령 직속 단일 행정구역으로 전환하고, 모든 규제를 과감히 해제하는 국가 시범도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와 유사한 모델은 이미 세계 여러 곳에서 실현된 바 있다. 홍콩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금융과 무역 분야의 자치권을 기반으로 성장하였고, 중국 반환 이후에도 특구 지위를 유지하며 중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홍콩은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본부이자 중국 기업의 해외 자금 조달 창구로 기능하며, GDP와 자본 유입이 동시에 증가하였다.
새만금은 이보다 더 나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과거에는 서해의 교역 요충지였고, 백강 전투가 벌어진 전략적 요지였으며, 오늘날에는 K-푸드 공급망과 K-그린 이니셔티브로 뒷받침되는 서해안 산업 거점이기도 하다. 지정학적으로도 동북아 산업·금융 복합지대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선언 수준의 규제 완화로는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규제 권한을 그대로 유지하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좋은 구상이 있어도 실행되기 어렵다. 따라서 규제자유 행정 시스템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투자·허가·조세·출입국 등의 모든 행정 절차를 통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통합개발청이나 특별행정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새만금은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전 세계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국제 평화혁신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다.
이러한 구상을 실현하려면 국회 차원의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며, 기존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권도 종료되어야 한다. 핵심은 에너지 전략이다. 재생에너지와 LNG 기반의 에너지 믹스, 그리고 국제기후금융을 활용한 발전소 투자 모델을 사전에 설계할 경우, 미국 AI 클라우드 센터, 글로벌 빅테크 기업, 밸런스 푸드·문화산업, 헬스케어 융복합 산업 등 다양한 기업 유치가 가능해진다. 자본은 예측 가능한 도시를 선호한다.
실용주의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과정과 창의적 결과로 입증된다. 국민이 실제로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본질적 역할이다. 새만금은 이 변화를 시험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이 도시에 성공 사례가 축적되면, 전북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산업 구조에도 긍정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저렴한 주거 비용과 풍부한 일자리, 그리고 전 세계 인재가 모일 수 있는 창의인재 미래형 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
이제 결단의 시기다. 대한민국은 공약만 있는 국가가 아니라, 절차와 성과 중심의 국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새만금을 통한 무규제 ‘국가 속의 국가 선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