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디자인과 통풍유수

백승기 · 2026-05-09 · 도시 풍수

도시 디자인과 통풍유수

인간은 동굴에서의 주거문화를 마감하고 농경시대로 진입하며, 집단체를 이루고 부족끼리 모여살기 시작했다. 마을과 도시는 하천을 끼고 산을 등지며 동서남북 방위에 의한 절대방위의 시대의 도시를 구성했다. 이는 북반구의 토속 풍수로 절대방 의한 해바라기 풍수 개념이다. 조선의 개국을 주도한 정도전·하륜·무학대사는 한양에서 해바라기풍수에 의한 절대방위를 기준삼아 4대문을 완성하고 경복궁을 배치했다. 21세기는 절대방의 풍수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상대풍수 시대가 되고 있다. 상대풍수란 방위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망망대해의 마도로스와 같다. 풍수는 묘자리나 찾는 기술이 아니다. 지난해 1천만 관객이 찾았던 ‘파묘’라는 영화에서 “풍수는 알면 과학이요 모르면 미신이다”라는 주인공 최민식 배우의 명대사가 기억난다. 풍수란 인간이 자연의 거대한 에너지 흐름 속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인가를 탐구하는 실용 과학이자 공간 인문학이다. 특히 산 자의 공간인 양택(陽宅)과 죽은 자의 안식처인 음택(陰宅), 그리고 이 둘을 관통하는 ‘통풍유수(通風流水)’의 원리는 현대 도시공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양택과 음택 풍수에서 공간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현재 우리가 거주하는 집과 도시를 뜻하는 양택, 조상을 모시는 묘소인 음택이 그것이다. 과거에는 음택을 통해 조상의 기운을 얻고, 양택에서 그 결실을 보며 행복과 번영을 누린다고 보았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음택은 역사적 뿌리와 장소성의 보존을 의미하며, 양택은 쾌적한 주거 환경의 조성을 뜻한다. 결국 좋은 땅이란 기복만을 가져다주는 곳이 아니라, 바람을 막고 햇빛을 확보하며 물을 얻기 쉬운, 인간의 생존과 안식에 최적화된 장소를 말한다.

통풍유수(通風流水). 풍수라는 말 자체가 ‘바람을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다’는 뜻의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유래했다. 필자는 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정의하여 ‘통풍유수’라 부른다. 바람은 기운을 나르는 매개체다. 막힌 공간은 기가 정체되어 생명력을 잃기 마련이다. 아파트 설계에서 맞통풍을 중시하고 도시 차원에서 바람길을 열어 열섬 현상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모두 현대적인 풍수 전략에 해당한다. 물 또한 재물과 생명력을 상징하지만, 고여 있으면 썩기 마련이다. 도심 하천을 복원하고 수변 공간을 활성화하는 것은 도시의 막힌 혈맥을 뚫어 활기를 되찾는 과정과 같다. 풍수의 범위는 개별 주택을 넘어 도시와 국가·지구 전체로 확장될 수 있다.

인류 문명은 거대한 자연의 흐름에 적응해온 역사다. 대재앙 속에서 생명을 보존한 노아의 방주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면, 현대의 국제 평화 유지 시스템은 지구라는 거대한 방주를 지키는 풍수적 장치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 회복과정 또한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항일독립전쟁기에 훼손된 국토의 혈맥을 잇고 독립기념관을 세워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운 것은, 과거의 음택적 가치를 현재의 양택적 번영으로 승화시킨 중요한 풍수적 실천이었다.

풍수는 이제 산속의 묘자리를 찾는 학문에서 벗어나 우리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 매일 숨 쉬는 거실의 창 방향, 발길이 닿는 공원의 배치, 나아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생태적 도시 설계가 바로 현대 풍수다. 양택과 음택의 조화는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의미하며, 통풍유수의 실천은 곧 도시의 문화 생태계를 위한 소통의 회복을 뜻한다.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면서 인간의 편익을 극대화하는 중용의 미학은 도시가 지향하는 인문풍수학의 정수다. 풍수는 결국 우리 삶 그 자체이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도시설계의 지침서이다. 백승기 건축사·도시공학 박사 출처 : 전북도민일보( http://www.domi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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