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와 보존의 방식을 넘어서 진화로

김현종 · 2026-05-28 · 칼럼

철거와 보존의 방식을 넘어서 진화로

전주종합경기장을 바라보며 우리는 새것과 오래된 것에 대한 희망과 향수가 있다. 새것에 대한 동경은 두근거림과 신선함이라면, 오래된 것은 친숙함과 따뜻한 기억이 아닐까? 오랫동안 우리는 새것을 사랑하고 신봉해 왔으며, 새것을 가진다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반면에 오래된 것은 경제적 잔존가치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최근에 오래된 것에 대한 것들을 재조명하고, 경제적 가치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항상 우리 주변에는 오래된 것과 새것이 같이 공존하고 있으며, 때로는 오래된 것과 새것의 접합방식과 태도에 따라 그 나라의 시민의식과 근대성을 평가하기도 한다. 이것은 무엇을 지켜야 하고,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의식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전주시민의 한 사람으로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진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새것은 영원한 새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며 오래되고, 오래된 것을 다시 수리하면 새것이 된다. 새것은 또다시 오래되고, 이 반복의 과정 속에 고풍스런 멋과 진정한 아름다움이 태어난다. 새것은 오래된 것의 진화과정이고, 오래된 것은 새것의 출발이다. 새것과 오래된 것에 대한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축척과 진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은 시간에 따른 변증법적 발전이 진화를 탄생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디자인된 도시가 하나의 순수한 진실을 말하며, 그 진실은 발견되지 않은 탄생할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반(反)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순들이 밖으로 드러나고 변화와 수정의 인식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재설계(Redesign)를 통해서 처음부터 내재해 있었던 모순, 즉 시대 변화와 환경에서 나타나는 모순을 제거하면서 새롭게 발전하는 합(合)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합(合)은 다시 정(正)이 되는 것이고, 그 정(正)은 또 모순을 만나게 된다. 바람직한 인간의 이성은, 역사적 잔존가치가 있는 것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퇴적하고 끊임없이 반(反)을 만들고 합(合)으로 진화한다. 이러한 정(正), 반(反), 합(合)의 선순환이 우리의 아름다운 도시와 환경을 만든다고 믿고 있다.

오래된 것에 대한 새로운 진화 방식에 대해서, 프랑스와 뉴욕의 두 가지 사례를 통해서 소개하고 싶다. 먼저, 파리의 프로므나드 플랑떼(Promenade Plante)는 바스티유 광장에서 뱅센숲으로 이어지는 기차 길을 산책로로 만든 곳이다. 푸른 나무와 식물들로 조성된 산책길이라는 의미로 프롬나드 플랑테는 1859년부터 1969년까지 바스티유 역에서 파리 동남쪽을 연결하던 철도가 있던 자리로 운행이 중단된 후 방치되어 있다가 1980년대 녹지로 조성되었다. 총 길이 4.5km 산책로로 기존의 철도구조물 위에 도보하면서 매우 독특한 신 건축물 개념을 도입해 흥미로운 공간으로 구성에서 출발했다. 도시철도의 올바른 기능이 쇠퇴하면서 나타난 기능주의 건설의 모순은 도시의 녹지공원이라는 합(合)으로 진화되었다. 프로므나드 플랑떼는 뉴욕의 하이 라인의 모델로 다시 진화한다. 1934년 ‘죽음의 애브뉴’로 불리던 맨해튼 로어 웨스트사이드의 10 Ave에 건설된 화물열차용 고가 철도가 1980년 철도 운행이 중단되면서 시민단체 ‘하이 라인의 친구들’이 결성되어 2003년 뉴욕시의 지원으로 철거 위기에 있던 하이 라인을 보존해 공원으로 개발하는 계획이다. 뉴욕의 하이라인은 프로므나드 플랑떼가 가진 단순한 전통적 녹지공원이라는 모순에서 뉴욕의 실용적이고 체험이라는 현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합(合)의 의도로 진화했다.

황폐한 무용지물의 ‘도시철도’가 프랑스에서는 도시의 전통적 ‘보자르 가든(beaux-art)’이 되었으며 프랑스의 전통 가든은, 뉴욕에서보다 실용적이고 체험적인 하늘공원으로 발전했다. 경제의 논리를 바탕으로 전면 재개발 혹은 철거하는 방식이나, 한 시대의 모습을 그래도 복원 보존해야 하는 방식은 진화도 아니고 발전도 아니다. 최근 전주시가 덕진동 종합경기장 부지를 둘로 나누어 건설·관리(CM)를 통해서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개발과 계획과정이 진정한 종합경기장이 가진 모순을 인식하고, 반(反)의 의미에서 합으로 이르고 있는지 의문이 생기기 않을 수 없다. 만약에 지금 우리가 스스로에 대한 진실한 모순을 찾지 못한다면 언젠가 우리의 후손들에 의해서 반(反)이 제기될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알면서 종합경기장을 바라만 보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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