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자!

김현종 · 2026-05-28 · 칼럼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자!

최근 광화문 한자 현판의 균열로 인하여 또 다시 한자 현판 표기를 놓고 뜨거운 논쟁에 빠지고 있다. 광화문 현판이 모습을 드러낸 지 석 달 만에 육안에 보일정도로 균일이 생긴 것은 매우 불길한 사안이다. 광화문 현판은 전통건축에서 어떤 의미 일까? 현판(懸板)은 ‘글이나 그림을 달아 놓은 판 조각’이란 의미로 일반적인 광고하는 간판과는 틀리다. 간판은 보여주기 위한 상업적 의미의 목적성을 가진다면, 현판은 뜻있고 상징적인 장소에 가치를 부여하는 의미성을 가진다. 그래서 우리는 광화문의 현판 그 자체에 관심을 두며, 그 광화문이 가지는 전통건축물의 가치와 장소, 대표성이 우리나라의 전통성 계승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발생했던 현판의 균열은 광화문의 가치와 현판의 정신성을 무색하게 하는 결과가 아닌가 생각되며 매우 불길한 징조이다. 광화문의 가치와 역사성을 생각해본다면 그 현판의 가치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현판이 부실한 재료나 건조과정에서 발생한 오류가 생긴다는 것은 결코 용납되거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입산 소나무로 만들었던, 금강산 육송을 사용했건 간에 현판의 균열 논쟁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현판의 균열과 한자현판이 현재 우리의 정신성에 균열을 만들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결과물은 정신적 균열로 나타났다.

불교에서 법당에 후불탱화(後佛幀畵)라는 것이 있다. 후불탱화는 석가모니 후불화(釋迦牟尼 後佛畵)로 석가모니를 주제로 한 불화를 모신 전각으로 대웅전, 영산전, 팔상전 및 나한전 또는 응진전에 그 그림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대웅전 석가모니 후불화를 후불탱화라고 한다. 후불탱화는 모든 과정이 정성스러운 작업이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어렵고, 가장 마지막에 진행되는 작업이 석가모니의 ‘안(眼)’ 즉, 눈을 그리는 작업이라고 한다. 석가모니의 안(眼)은 탐욕스러운 돼지의 눈이 되어서도 안 되고, 욕망이 가득한 타락한 인간의 눈처럼 보여서도 안 된다. 석가모니의 눈은 따뜻하고 자비롭고, 냉엄함을 가진 신비로운 눈이다. 다시 말해 석가모니의 안은 눈 이상의 눈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석가모니 안을 작업을 하는 사람은 몇 일간 새벽 기도를 드리며 불심이 동(動)할 때 한 순식간에 그 작업을 마친다고 한다. 후불탱화는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스럽고 고귀하게 기도하는 마음가짐이다. 광화문에서의 현판은 광화문의 안이며 대한민국의 눈과도 같은 것이다. 그 현판에 균열이 생긴 것은 부처님의 눈에 균열이 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정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광화문 현판은 외연적인 전통성만 모방하고 있고, 바람직한 시대정신을 내포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커진다. 현판의 글자나 형태가 사대부를 모방하고, 무늬만 의미 있는 현판은 이미 상징과 의미를 상실했다. 결과적으로 현판의 정신적 의미와 작업의 성스러움이 간과되어 있고, 오직 보여 지는 형태만 고집하려는 전형적인 사대주의를 그대로 표방하고 있으며, 결과물은 정신적 균열로 나타났다.

역사적 상징인 광화문은 복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현판은 복원이라 보다는 불완전한 복제라고 하는 게 어쩌면 정확한 표현 일듯 하다. 유리원판 사진에서 최첨단 디지털 기술로 살려낸 것은 글씨가 아니라 단순한 그래픽 그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광화문 광장에서 아무리 오래 현판을 바라봐도 예전의 느낌을 느낄 수 없다.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자!

화재로 불탄 숭례문이 복원되고 있는 시점에서 모든 것이 진품이 아니라면, 남은 건 순수한 시대정신이다. 숭례문을 다시 복원했다고 과거의 숭례문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전통적 정신의 계승이다. 한자식 표기순서를 고집하고, 중국문자를 고집하면서, 그 정신성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원래 한자형태의 광화문 현판이 보존되었다면, 당연히 우리는 그 현판의 가치와 역사성을 고려해서 지켜야 함이 바람직할수도 있다. 그런데 디지털로 복원한 모조품 현판을 진품인 것처럼 흉내 내고, 엉성한 건조과정 때문에 발생한 균열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우리의 본질 성을 상실하면서 흉내만 내려는 전형적인 사대부 지향적인 행태이다. 우리고유의 글자도 아니고, 균열을 막지 못하는 없는 형편없는 현판은 어떤 의미도 없다. 현대와 과거가 소통한다는 것은 다양한 가능성과 사건에 대한 끊임없는 정신적 대화를 의미한다. 의미에 대한 반성과 정신성은 이성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서 새로운 해석과 미래를 주창(主唱)하는 과정이 현대의 시대정신이다. 우리 후손에서 과거의 정신과 현대의 참된 정신을 계승하고, 그 현대의 정신성을 미래에 물려주는 과정에서 진실로 필요한 것은 우리의 정체성으로 만든 진실한 한글현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목록으로 · 뱅기노자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