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화된 추석 후유증! 가족의 배려가 요구된다

김현종 · 2026-05-28 · 칼럼

만성화된 추석 후유증! 가족의 배려가 요구된다

가을하면 떠오르는 것은 만국기 펄럭이는 가을운동회와 황금빛으로 물든 노란 들녘의 추석 일 것이다. 어릴 때 운동회는 동네 사람들이 어울리는 마을 잔치였다. 어린 학생들과 엄마, 아빠,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가 일심동체 되어 결속과 화목을 다졌다. 그런 의미에서 가을 운동회는 축제이며, 소통의 장이었다. 현대사회에서 결속과 소통은 어린 학생들에게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니는 직장과 일터에서도 워크숍 (Workshop)이나 M.T (Membership Training)를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계획한다.

그러면 우리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정과 사회에서 가족관계 개선을 위한 소통과 화합 프로그램은 존재하는가?

오늘날의 추석의 의미는 무엇일까?

오랜 기간 우리는 추석과 설 명절을 통해서 가족의 소통과 화합을 유지하여 왔다.

추석은 신라 유리왕 때 두 왕녀들로 나누어진 부녀자 팀이 베 짜기 시합을 통해서, 이긴 팀은 춤을 추고, 진 팀이 음식을 준비해 단결과 화합을 했다는데서 시작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추석은 햇곡을 수확하여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한 조상님들께 감사드리는 축제였고, 이웃 친지와 음식을 나누어 먹고, 서로 화합을 도모하는 온 동네의 축제였다. 노동을 공유하는 농경 사회에서 추석은 분명 가족들을 위한 행사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근대를 거치며, 산업구조가 급속하게 바뀌면서 노동의 역할이 가족중심제가 아닌 직장이나 사회관계 중심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사람과의 관계는 직장동료나 학교 선후배 또는 정치적 이해관계로 급속하게 이동하게 되었다. 추석 풍속도 또한 가족친지보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지속을 위한 인사치레를 더 많이 하곤 한다. 결국 친지는 어떻게 보면 관계는 있지만 실질적인 왕래는 없는 허울적인 형식만이 존재하는 관계로 변질되는 것 같다. 어쩌면 현대인에게 추석의 의미는 전통에 대한 회상 일뿐일지도 모른다.

변질된 추석은 만성적인 후유증에 시달린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여성 대부분은 추석의 어려움으로 “ 끊임없는 가사노동”을 꼽았으며, 남성 대부분은 “친지간의 어색한 자리”라고 말한다. 차례 상 준비를 위한 여성들 위주의 가사노동과 친인척을 맞아들이기 위한 정신적 스트레스 그러는 동안 부부 사이의 갈등은 해를 거듭하며 만성적으로 커져만 가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조차 사촌들과의 비교로 인한 스트레스는 친지와의 관계를 회피하는 현상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여성의 측면에서 시댁과의 갈등, 며느리에게만 요구하는 과도한 노동, 처가와 시댁의 차별, 동서간의 불화는 결국 가정 파탄과 이혼의 시작점이 되는 것들이다. 또한 간만에 만난 자리는 형제간의 재산싸움으로 번지기 일상이고, 부모님 노후에 대한 책임전가를 위한 자리로 변질되어, 종국에는 서로에게 큰 상처 주고 각기 고향집을 떠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추석은 명분만 남아있고 계승에 실패한 전통의 한 단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전통은 시대적 상황과 인식을 반영 할 때 계승 된다.

추석은 조상과 전통을 위한 의식만이 아닌 산사람을 위한, 산사람과의 관계와 화목을 돕는 가족 축제가 되어야 한다. 가정을 결속시키는 계기, 가족구성원들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야 참된 추석의 현대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공적인 워크숍에는 계획적인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 프로그램은 좋은 아이디어와 관계개선 통해서 그 조직을 발전시킨다. 단지 놀기 위해서, 군기 잡기 위해서, 술 마시기 위한 워크숍은 항상 실패로 돌아오고, 오히려 위계질서를 어지럽히고, 관계를 부정하는 부작용이 따른다. 농경사회가 아닌 산업사회의 가족구성원은 서로가 오랜 시간을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와 입장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생활과 같은 일방적 입장 설명은 갈등만 부추기게 되고, 관계를 회복시키지 않는다. 사회조직과 가족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사회는 손익의 입장에서 설명한다면, 가족은 이해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족관계는 위치에 대한 입장 설명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애정이 담긴 이해와 배려를 동반해야 한다.

모두 즐거워야 할 추석이 힘들고 두려운 것은 애정이 담긴 이해를 동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다. 오래된 구성원이 만나서 서먹서먹한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올바른 추석은 가족의 화목을 지키고 이끌어내며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옛날의 고리타분한 가족구조의 선입견이나 추석 의식은 과감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함께 장을 보고, 정성스럽게 차례음식을 같이 만들어 보면서 서로를 이해해보자. 성묘 후엔 집에만 있지 말고, 단체 공연 관람을 하거나 불우한 시설을 방문해서 소외된 계층에게도 가족의 의미를 심어주는 작은 봉사를 해보자. 참 가족과 참 사회는 우리가 가깝게 다가오기를 어머님의 품처럼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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