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新舊)의 조화(調和)

김현종 · 2026-05-28 · 칼럼

신구(新舊)의 조화(調和)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에는 향기가 나게 마련이다. 그 향기는 독립된 유적지나 단일 장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시전체에서 은은히 베어 나오는 차(茶)향기와 같은 것이다. 사실, 전주시 전체가 이러한 역사도시의 범주 안에 들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의가 필요 하다. 역사도시 개념은 유적지 개발이나, 건물 외관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포괄하는 문화유산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연히 전주를 역사, 전통, 교육, 문화의 도시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 역사와 전통을 가깝게 느끼기란 쉽지 않다. 전주에 역사와 전통이 스며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여느 도시와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전주영화제 기간에 전주 주변 지역을 여행하면서 특이하게 다세대나 다가구 주택에 기와를 올려놓은 형식의 건물 군들을 발견했다. 아마도 추측 하건대, 전주가 역사 도시라는 인식의 연장선에서 그러한 외관을 만들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마치 양복입고 머리에 상투 올린 모습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전통에 대한 자세가 아니라, 역사, 문화에 대한 콤플렉스로 형태만 모방하려는 전형적인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전주시민의 기억과 의식 속엔 전주의 역사성과 자존심이 있지만, 실제로 그 기억과 추억만큼 우리의 모습을 지키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했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과거 기억 속에 살면서, 그 기억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려고 역사와 전통을 스스로 강조하려는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다시 말해서, 그 모습을 넘어서지 못하고, 과거의 역사와 현실적 괴리가 자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위에서 언급한 ‘다세대 주택과 기왓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과거에 좋았던 기억을 회상하며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서 부정하거나, 그래서 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강조하면서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행태로 나타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우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전주영화제’나 ‘한지문화 축제’ 또한 그 한풀이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며, 기억과 추억에 대한 대리만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전주 영화제’나 ‘한지문화축제’는 적어도 그러한 행태는 벗어난듯하다. 왜냐하면 그 속에 과거의 가치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가치를 현재에서 승화시키고, 그 승화는 미래의 잠재적 가치로 공존시키며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정체되어 있다 보다는 나아간다. 그 방향성은 진보일수도, 후퇴일수도 있지만, 분명히 흘러가고 있다. 전주라는 고도(古都)는 역사도시로서의 고리타분한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성을 가지고 흘러가야 한다. 그것은 신구의 조화를 통한 승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신구의 조화는 정장과 상투를 함께 입고 쓰자는 말이 아니라, 새로운 합(合)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우리의 전통에는 너무도 풍부한 콘텐츠들이 존재하고, 그 특수성을 강조하는 전주의 모습은 그것의 흉내 내기가 아니라, 새로움을 합(合)을 통한 승화이면서 진보를 이루어내는 같다. 이 번 영화제 기간 동안 전주는 전통 도시라는 구조적 틀 아래, 문화, 축제, 영화, 산업이 결합된 종합예술제로 승화 발전 시켰다. 결국 전주의 정체성은 ‘전주 영화제’와‘전주한지축제’에서 나타난 전통문화 콘텐츠를 오래된 것과 새 것의 ‘합의 조화’라는 서로의 재구성을 이루어 낸 것 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화롭다는 것은 이성적, 혹은 감성적으로도 긍정적인 표현임엔 틀림없다. ‘조화’라는 것은 성공적인 관계성을 의미하고, 성공적인 도시, 사회,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 관계성을 바르게 정착 시켜야 한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은 곳에 있다고 그들이 조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 관계성이 공동으로 어떤 일을 같이 하고, 지속될 때, 성공적인 조화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와 문화의 성공적인 관계성은 전통 역사와 문화에 대한 막연한 향수도 아니며, 구체적인 복원도 아니다. 그 관계성은 새로운 영역을 탄생시키고 창조해 갈 때, 그 곳이 향기를 만들고 그 향기는 도시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서구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로 우리는 로마와 아테네를 꼽는다. 그들의 문화는 현대문명의 뿌리이며 서구문명은 그 계보를 잇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역사와 문화는 현대문명과 연결선상에 있다. 하지만 아시아의 역사와 문명의 뿌리는 서구의 문명과는 근본이 다르다. 결국 이질적인 문화의 씨앗은 우리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왔다. 그 혼란 속에 우리 방식에 맞는 문화가 자랄 때만이 단절되었던 역사와 문화의 괴리감을 극복하고 승화 시킬 수 있다. ‘전주 영화제’ 와 ‘한지문화축제’는 도시가 어떻게 문화를 가지고 자라나고 승화시키는지 그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는 성공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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