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김현종 · 2026-05-28 · 칼럼
우리가 일상에서 부르는 어머니 호칭은 모친, 엄마, 어미, 맘, 마미 등 다양하고도 많다. 호칭으로서 어머니는 과연 어떤 존재로서의 의미일까? 그리고 어머니의 은혜와 사랑은 무엇인가? 자식을 돌봄에는 주저함이 없으면서도 효도에는 머뭇거리며 정성을 다하지 못한 지난 현실에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살아오는 동안 어머니라는 단어는 하루도 머릿속을 떠나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쉰을 막 넘은 나이에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키 작은 사랑을 빌어서 용기를 내어 고민해 본다. 어느 초여름 나는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럽고 위엄 있는 계룡산을 다녀왔다. 출발을 동학사로 하여 북쪽으로 오르기를 1시간여 남짓, 남매 탑 둘이 나란히 시야에 들어왔다. 세파 속에서 수백 년을 마주보며 그들은 다정하게 그 자리에 있다. 몇 번의 탑 도리를 하고, 내리막 모퉁이를 돌자 5칸짜리 작은 암자는 이미 올 줄 알고 기다리는 듯 따뜻하게 마중을 나왔다. 넓적 돌 토방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젊은 스님의 목탁 소리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벗 삼고서 산사를 통째로 휘감았다. ‘어미는 아이를 10달 동안 뱃속에서 사랑으로 키우고, 아이를 낳을 때는 3말 8되의 응혈(凝血)을 흘리며, 8섬 4말의 혈유(血乳)를 먹인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서 수미산을 백천 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한다. 지친 몸을 뒤로하고 힘겹게 올라간 산사에서 처음 맞이한 부모은중경! 어머니의 사랑과 은혜에 절로 고개를 숙인다.
서정 시인이자 소설가 정호승은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에서 어머니의 존재는 ‘해님과 같다’라고 하였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해님은 어머니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모나리자의 미소 속에 숨겨진 신비처럼 어머니의 사랑 속에는 참 희생이 있다.
또한, 어머니는 대해의 등대이며, 밤하늘의 북극성과 같은 존재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은 콜로세움 같은 원형경기장을 달리는 사랑이라고도 한다. 부모가 자식을 쫓아가면 자식은 부모한테서 멀어져 가지만, 탑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떠났던 자식은 반드시 부모가 있는 자리로 돌아온다.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생명을 얻고, 어머니의 미소와 사랑, 희생과 겸손을 배운다.
근대 이후 어머니는 모성애를 가진 숭고하고 신성한 존재로 정의되어 지기도 하였지만. 어머니 역할과 모성애적 행태가 일방적으로 강요됐다는 점에서는 일정부분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페미니스트들은 일방적인 어머니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탈 모성애를 지향하며 여성의 자유 연애론을 옹호한다. 근대초기 서양화가 나혜석은 여성과 어머니의 양형적 의무감에 의문을 던지기도 했었다. 어찌 되었든 어머니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모든 사물에 대한 시원을 상징한다. 오랜 세월동안 정의 되어지는 어머니의 숭고한 모습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엄하면서도 끝없이 자애로우며, 하해와 같은 은혜로운 분이시다. 이러한 연유로 교회에서는 어머니의 사랑을 ‘절대자의 사랑’으로도 표현하고 있다.
최근 대가족에서 1~2인의 핵가족으로 분열되는 현대사회는 여성들에게 개방적 활동의 자유가 주어짐과 동시에 어머니로서의 임무도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짐마저 지고 있다.
여성들이 두 가지의 임무를 함께 진다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지만, 스스로 그 길을 택함으로써 보다 더 큰 삶의 의미와 변화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안골의 어머니는 매일같이 자식들을 위한 사랑의 기도를 하는 것이 일과가 되신 것 같다. 내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매일저녁 아이들을 위한 사랑의 기도를 한다. 아마 먼 훗날에도 내 딸들 또한 어머니와 내 아내가 해왔던 것처럼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는 숭고함 속에서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간직하고 산다는 것이 아주 큰 행복이다.
깊고 깊은 어머니의 사랑은 마를 줄 모른다.
가정과 자식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셨고, 자식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쏟으신 정열은 한 여름의 태양보다도 훨씬 더 뜨거우셨다.
가정과 자식을 위해 묵묵히 일생을 바치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성직자와도 같다. 그러기에 우리의 어머니의 모습에서는 절대적 존재자로서의 숭고한 아름다움마저 느껴지는 것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따뜻하고 든든한 영원한 백이다. 그러기에 자식들은 가장 힘들고 어렵고 절망적일 때 어머니를 부르고 찾아가서 품에 안기기를 갈망한다. ‘어머니 제가 왔습니다.’ 힘들고 지친 자식이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항상 맨발로 나오신다. 그리고 말씀 없이 마음으로 안아 주신다. 우리는 통상 웨런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처럼 돈이 많은 자산가를 부자라고 한다. 또는 사회적 관계(social capital)가 좋은 사람들을 부자라고도 한다. 불가에서는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자’가 진정 부자라고 하고 있다. 이제라도 희생과 봉사 자애로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께 용기를 내어보자. 투박한 기계음이 서너 번 울리고 나면 반가운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아들, 오랜 만이야’ 어머니와 대화하자. 그리고 ‘어머니 사랑합니다.’라고 말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