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 없는 효자비

김현종 · 2026-05-28 · 칼럼

‘효(孝)’ 없는 효자비

‘효(孝)’ 정신문화의 계승

전통문화 유산에는 눈에 보이는 형태의 유형문화재와 보이지 않는 무형문화재가 있다. 무형과 유형의 유산은 우리의 정신문화와 물질문화의 정수이며 대표적 표본들이다. 무형 문화재가 전시나, 공연, 예술의 표현으로 그 형태가 확인 된다면, 유형 문화재는 역사적 가치와 정신을 담고 있는 물리적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무형과 유형의 범주에 포함할 수 없는 수많은 정신과 문화가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그 단편적인 예로 효(孝)라는 정신문화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효는 일반적인 생활윤리와 더불어 우리 가정질서의 근간이다. 효라는 정신문화와 그 정신이 실천되는 효행(孝行)은 유·무형의 문화재만큼이나 우리 정서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효자비(孝子碑)는 효라는 정신을 효행(孝行)이라는 실천을 통해서 유형화시킨 정신적 유형 문화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와서 효(孝)의 가치는 점점 그 기능을 상실하고, 구속력이 약해져 가고 있다. 효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고, 부모를 봉양하는 가족이 점차 감소 추세로 돌아섰으며, 가정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의 상실은 가정교육문제, 청소년문제, 성폭력문제, 주택문제 등 수많은 사회문제의 원인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전통과의 단절은 문화와 보존에서 뿐만이 아니라, 정신문화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결국 효(孝)문화의 단절은 가족과 이 사회의 기초 정신의 붕괴라는 결과를 부르고 있다.

수원 백가 효자비

전통 도시라 불리는 전주에서, 정신문화 계승과 단절이라는 상반된 화두는 중요한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전주시내에는 과거의 효행(孝行)을 기념하여, 만들었던 몇 곳의 효자비(孝子碑)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1가 420-2번지에, 일명 ‘수원 백가 효자비(孝子碑)’가 있는데, 현재 주변 관리의 부재로 도심 속의 골칫덩어리로 변모하고 있다. 과거 백규방, 백진석 부자와 백행량, 백응만 부자의 4대에 이어온 효심을 기념해서 구한말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들은 부모에 대한 극진한 병간호, 정성, 시묘 살이 등을 통해서 전주에서 효(孝)의 모범과 근간을 세운 인물들로 추대를 받았다. 하지만 현재 주변 관리상의 문제로 도심 속의 폐허지로 변모하고 있으며, 이는 전주의 정신문화를 담고 있는 유형문화재에 대한 관리 상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그렇다면 깔끔하고 깨끗이 관리하고 정돈하면 전주의 정신이 계승 될 것인가? 효자비(孝子碑)의 참된 의미는 효를 생활로 받아들여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 하는데 그 진정성이 있다고 본다. 효자비(孝子碑) 그 자체는 이미 하나의 표식에 불과 할지 모른다. 우리사회가 비록 효 문화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 숨겨진 수많은 효자들이 있으며, 그 모두에게 효자비와 같은 정신문화를 계승하는 의식이나 프로그램은 필요한 일이다. 물질 만능 사회 속에서 정신성의 가치를 사람들은 물질로 대체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것은 정신성을 무색하게 하고, 형식만 남게 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황폐해진 담장 속에 갇혀서, 아무도 기리지 않는 효자비(孝子碑)만을 우상화 한다면, 이미 효자비(孝子碑)는 정신이 사라진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효자비의 주변 관리상태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정신문화를 계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효자비(孝子碑)에 심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효의 정신을 계승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도시 전주는, 전주이면서도 정신이 없는 우상과도 같다. 유형 혹은 무형의 유산은 정신과 실천으로 나타나고, 그 형태를 떠나서 서로가 공존 할 때에만 문화재로서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다. 만약 정신없는 형식, 표현 없는 무형문화는 어떠한 가치도 찾을 수 없다. 우리의 정신문화의 유산인 고사동 효자비(孝子碑)는 깨끗이 관리되고 유지되는 것과 아울러 효의 정신을 알고 실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란히 서고 싶어 할 것이다. 세월의 담장 속에 가둬져 있는 효자비(孝子碑)는 진실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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