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우주가(宇宙家)의 중심 도시를 준비하다
백승기 · 2026-05-22 · 도시 풍수
집이란 한 사회가 세계관을 이해해온 방식이 응축된 장소다. 인간이 어디에 터를 잡고 어떻게 공간을 구성해왔는가는 그 지역의 자연관과 인간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집우·집주·집가(宇宙家)’라는 개념은 한국적 공간 철학의 핵심을 보여준다. 집이란 인간을 위한 거주의 도구이면서 우주의 질서를 담아낸 그릇이며, 인간의 몸과 마음, 민족의 혼이 함께 머무는 하나의 세계였다.
전주는 이 집우(宇)의 철학을 도시 차원에서 가장 온전히 간직해온 공간이다. 동고서저의 완만한 산세와 넓은 평야, 전주천과 삼천이 감싸는 물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지형은 집중보다 균형을 선택해왔다. 집과 마을은 자연을 밀어내지 않고 끌어안았고, 온돌과 마루, 마당과 골목은 인간의 몸과 생활 리듬을 자연에 맞추는 장치였다.
전주의 공간은 오랫동안 지친 몸을 편안하게 쉬게 하는 어머니의 도시였다. 그리고 마음의 도시이기도 하다. 마을의 골목과 마당 중심의 주거 구조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키지 않았다. 공간은 이동을 위한 통로가 아니라 머무름과 대화를 허용하는 장소였다. 풍수에서 말하는 좋은 터란 재물이 모이는 자리가 아니라 감정이 거칠어지지 않고 관계가 유지되는 사람 사는 관계중심적 공간이다.
도시 전체가 이러한 정서적 구조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전북은 최명희 작가의 ‘혼불’이 살아 숨 쉬는 한류 문화와 민족혼의 산실이며 역사적 보고이기도 하다. 경기전과 실록각, 전라감영, 전동성당, 객사와 향교는 시간의 층위가 겹쳐진 공간 축이다. 조선 왕조의 기원과 지방 통치의 기억, 유교적 질서와 생활 문화가 도시의 중심을 이루어왔다. 전주는 현재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함께 품는 시간의 도시였다.
이제 전북 전주는 2036 하계올림픽 유치라는 시대적 과제를 앞에 두고 있다. 올림픽은 스포츠 행사뿐만 아니라 도시의 철학과 삶의 질을 세계에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올림픽은 경기장 중심의 이벤트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하나의 집이 되는 우주가 올림픽이다. 선수와 방문객, 시민 모두가 몸을 쉬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이 도시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전주가 맡아야 할 역할은 중심 도시의 역할이다. 그러나 그것은 집중과 확장의 중심이 아니라 분산과 연대의 중심이어야 한다. 전북의 농촌과 생태, 역사와 음식, 치유와 문화가 전주를 거점으로 세계와 연결되는 다층 순환구조가 필요하다.
전주는 대한민국을 대표해 세계를 맞이하는‘집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집우·집주·집가의 관점에서 보면 올림픽 준비란 도시를 하나의 집으로 정비하는 과정이다. 사람을 위한 안전한 동선과 휴식 공간, 마음을 위한 문화와 소통의 장, 혼을 위한 역사와 정체성의 보존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중심이 잡히지 않은 도시는 세계적 행사를 감당할 수 없고, 중심이 살아 있는 도시는 세계를 품을 수 있다.
전주는 이미 그 자격을 충분하게 갖춘 도시다. 집과 마을, 도시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온 공간 기억은 여전히 살아 있다. 2036 올림픽은 전주가 세계를 맞이하는 행사가 아니라, 전주가 어떤 도시인지 세계에 보여주는 자리다. 집은 여전히 우주를 담는 그릇이며, 우리는 그 그릇의 중심에 서야 한다.
백승기 <건축사/도시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