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곳으로 나를 보내자

김현종 · 2026-05-28 · 칼럼

새로운 곳으로 나를 보내자

우리는 막연한 현실 속에서 희망과 꿈을 꾼다. 인생 로또를 꿈꾸고, 영화 같은 연인, 환상적인 직장을 희망한다. 어딘가에 나를 위한 참된 삶이 있다고 믿지만, 사실 그곳엔 냉정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 이상적 이데아를 믿고, 기다리는 인간의 행태를 ‘소외적 삶’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소외 적이지 않고, 인생이라는 무대 속에서 당찬 주인공으로 나의 삶들을 실천할 수는 없을까?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했다.’ 우리 개개인 역사 또한 마찬가지로 도전의 역사다. 역사의 시작은 도전이고, 도전을 통해서 만이 꿈을 향해 전진할 수 있다. 하지만 도전이란 말은 우리에게 너무 거창하다. 도전을 달리 표현하면 새로운 방식과 다양한 생각들이 아닐까? 매일같이 해오던 방식을 거부하는 것이나, 나를 새로운 곳으로 보내는 방법들이 도전이다. 출근할 때 매일 같이 만나는 사람들, 반복되는 업무와 일상, 그리고 익숙한 장소들과 느낌들은 결코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없다. 매일 반복되는 만남과 일상들은 개인의 역사를 바꾸기에 충분한 인(因)이 되지 못하고 새로운 연(緣)을 발생 시키지도 않는다.

‘도전은 새로운 인연 (因緣)의 발견이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수많은 인연 속에서 살고 있지만 대부분 제한적이다. 인연은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만남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오감이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의 인연이다. 그 인연은 아름다운 사람일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음악, 아름다운 장소, 의미 있는 책한 권이 될 수도 있다. 우리를 바꾸게 하는 시작이 바로 그 다양한 인연을 의미 한다. 얼마 전 투자의 귀재 ‘워런버핏’ 회장과 함께 하는 점심 한 끼 값이 사상 최고가인 263만 달러에 낙찰된 적이 있다. 워런버핏과의 점심은 좋은 인연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인연이란 바꿀 수 없는 운명적인 인연이 있는 반면에, 의도적인 만남을 통해서 만들어 지기도 한다. 토인비는 ‘역사는 운명적인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워런버핏에게는 옷깃을 스치는 정도인 단순한 인연일 수도 있겠지만, 개개인에게는 그 와의 만남을 통해서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지금 우리가 정적인 인연 속에 있다면 새로운 인연을 통해서 소외된 삶을 탈출하는 건 어떨까? 인연은 사람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고 경험하는 세계가 인연이다. 새로운 곳으로 나를 보내보자! 나의 일상의 선택에서 다른 인연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하철을 타는 출근길을 버스로 바꿔보자. 지각 할지도 모르고, 더 힘이 들지도 모른다. 만약 처음 타는 버스출근이라면, 반드시 다른 인연에 노출 될 것이다. 다른 길, 다른 사람들, 다른 도시경관, 그리고 다른 생각을 접하게 된다. 점심 식사 때도 다른 사람들과 점심식사를 해보자, 다른 사람들과 식사는 또 다른 세상을 들여다보게 한다. 퇴근 동선 속에 새로운 장소를 집어넣자. 새로운 사람, 다양하고 수많은 새로운 인연들을 집어넣어 보자. 우리의 눈은 새로운 인연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우리의 삶은 정적에서 동적인 인연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려는 내성과 마음의 태도 또한 동적으로 바뀌어 간다. 더욱 과감하고, 적극적인 방법이 있다면, 통째로 나를 집어서 멀리 던지는 방법이다. 내가 모르는 직장, 혹은 내가 모르는 국가, 내가 모르는 이념, 내가 모르는 종교, 내가 모르는 날씨, 가장 멀리 느꼈던 곳으로 나를 보내버리자. 마치 택배를 싸듯이 나를 싸서 그 곳으로 보내버리자. 그곳엔 반드시 인연이 있다. 불길한 인연이 있을 수도 있고, 아름다운 인연이 있을 수도 있다. 아름다운 인연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서 내가 바뀌고, 그 상대가 바뀌는 일일 것이다. 다른 누군가와 만남은 충돌이 되어 불과 기름의 관계가 되어 폭발할 수도 있고, 불과 물이 되어 불이 진화 될 수 도 있다. 이것은 마치 하나의 도전이며 갈등의 시작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 속에 진화의 역사가 존재한다. 소용돌이치는 그 속에서 나는 내 인생의 중심이며 소외된 삶을 벗어나는 것이다.

도전은 나와 새로운 인연이 만나는 것이며, 진화는 다른 인연의 방과 방 사이의 벽을 허물면서 하나의 방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방은 하나의 허공이며 ‘나’라는 존재와 ‘너’라는 존재가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진화는 도전의 승리를 의미한다. 나의 존재감과 가치를 더 높여주며 내 인생에 당당한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새로운 세상으로 나를 보내자! 그 속엔 더 많은 인연과 세상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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