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보존에서 `대중의 역할'
김현종 · 2026-05-28 · 칼럼
“대중’의 역할”
일반적으로 “역사 보존” 하면 오래된 성곽을 복원하거나, 역사적 사실이 있는 곳에 기와지붕을 만드는 이미지가 연상 된다. 유형문화의 보존에 대한 하나의 고정관념이다. 아마도 지난 군사정권시절 “전통 문화의 계승”이라는 정책 아래 일반 대중에게 외면 받았던 복원사업들에 대한 부정적인 잔상들 일지도 모른다. 보존적 유산에는 유형과 무형의 유산이 있고, 필요에 따라 성곽을 복원하고 지붕에 기와를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복원사업의 생명력은 외형적 복원보다는 일반 대중과 같이 호흡하는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유형과 무형의 “보존적 유산’”에 생명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치를 확인하는 것은 바로 대중의 이해와 지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모든 형태의 역사문화가치에 대해 대중의 지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달 말에 전주에서 “2010 아시아·태평양 무형문화유산축제”가 이 개최된다고 한다. 무형의 예술, 특히 전통공연과 장인기술 등 다양한 무형예술을 대중화 시키는 노력과 대중에게 친근감으로 다가가는 방식은 그 생명력을 재탄생 시킨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의 모든 유/무형 자산은 앞서간 선조들에 의해서 만들어 졌지만 그 가치의 진실성과 이해는 “우리” 라는 “대중”이 가지고 있다. “대중의 소임”은 모든 역사적 자산을 이전과 같이 복원하는 게 아니라 그 가치를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다. 역사적 가치의 진실성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대중의 소임은 다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익산 역사유적지구”와 같은 역사유적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tentative List)에 추가되었던 소식을 자축하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의 문화유산이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 받는 것은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타적 입지를 가진 역사유적과 보물은 그 자체로 찬란한 문화적 우월성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세계화 유산으로 가치를 말하기 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외의 수많은 역사유적과 문화에 대한 대중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대중은 진실로 역사 문화의 가치를 이해하는가? 아직도 고딕이나 바로크 스타일 양식이 우월해 보이고, 오랜 된 전통민가들이 천박해 보인다면, 우리의 이성은 여전히 전근대 속에 살고 있고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누군가 대중의 역사의식을 깨우는 일에 실패했다면, 그 책임은 바로 전문영역의 지도층과 지식인층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식인의 역할은 그들의 의식을 깨우고 자각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대중은 때론 일상적인 자각으로부터 멀어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새로운 자각과 역사적 소명을 통해서 임무를 부여 받을 경우에는 막강한 힘을 보유하기도 한다. 유산의 보존을 결정하는 실질적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그 보전주체를 바라보는 시민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의식으로부터 멀어져있는 대중을 바로 잡아주는 역할이 바로 지식인들의 몫이다.
대중이 그 역사성을 받아들이고 공유하는 자유로움
주변을 둘러보면 무형/유형의 역사유적과 유물은 여전히 우리와 멀리 있기만 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슴은 뜨겁지가 않다. 아마도 쉽게 뜨거워지지 않는 이유는 역사가 대중과 오랫동안 분리되어 왔고, 억압되었기 때문 일 것이다. 억압된 대중성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콤플렉스로 채워져 있고, 그 가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많은 인식의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뜨거워지지 않고. 가치를 이해하는 시간이 더 필요 할지 모른다. 우리의식을 지배하는 억압된 역사인식은 일제 식민지와 군사정권을 겪는 동안의 근 현대의 단절에서 시작되었다. 근대 역사성의 대한 반성을 통해서 콤플렉스로 채워진 곳을 재조명하고 메워야 하는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대중이 그 역사성을 받아들이고 공유하는 자유로움이 있을 때 그 가치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