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풍류속으로] (3)순창지역 풍류와 정읍 선비정신 ‘섬진강 풍류도를 찾아서’
김현종 · 2026-05-27 · 자유
섬진강댐은 정읍·김제를 비롯한 전북 서부지역 호남평야의 너른 들녘을 적시기 위해 칠보수력발전소 터널과 운암취수구를 통해 동진강에 넘겨준다. 또한 남해로의 긴 여행을 위한 순창에서의 여정을 시작한다.
섬진강은 순창으로의 여정 이전에 순창군 복흥면 서마리에서 시작하는 추령천이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에서 섬진댐과 합류한다. 순창으로의 여정을 시작한 섬진강은 구림면 운북리에서 발원한 치천을 임실군 덕치면 일중리에서 만나고 장수군 산서면 오정리에서 시작한 오수천과 적성면 평남리에서 만나 드디어 완연한 강의 모습을 갖춘다. 이어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경천제에서 시작한 경천과 유등면 두승리에서 합류한다.
순창지역의 풍류
순창지역도 다른지역과 유사하게 선조들이 산수좋은 곳에 정자, 누각 등 누정(樓亭)을 짓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감흥을 시와 서화로 노래하며 풍류를 즐겼다. 나아가 후학을 양성하고 문학을 논하며 사회 현상과 국가 발전을 논한 곳이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비들은 삶을 사색하고 수양하며 추모와 선양, 신체 단련의 공간으로 활용했다. 순창지역 주민들은 섬진강댐으로부터 내려온 순창구역 섬진강 구간을 적성강(赤城江)이라고 부르며 용궐산, 무량산 아래로 흐르는 지역을 만수탄이라 칭한다. 이 지역에 요강바위와 투구 모양의 돌섬들과 소(沼)를 종호(鍾湖)라 불렀다.
이 종호 주변에 조선시대 양운거(1613~1672년)가 아름다운 경관을 향유라하고 풍류를 누린 9개의 정자 종호정(鍾湖亭)을 세웠다. 여섯명의 지인들과 함께 노닐었다해 육로정이라고도 불렀던 누각에서 시주(詩酒)를 즐겼다. 9개의 정자는 사라졌지만 칠언절구시 종호팔경운에서 종호의 경관과 풍류객들의 흔적이 전해지고 있다.
종호정의 위치로 추정되는 바로 아래 조선 성종때의 학자 구암 양배를 기리기 위한 구암정(龜巖亭)이, 섬진강 본류와 오수천이 만나는 적성면 평남리에 어은정, 유등면 유촌마을에 어초정 등이 순창의 풍류를 대변하고 있다.
탐방자들이 찾은 풍류도 △산과 물의 흐름에 따라 문화가 형성 되었다.
섬진강은 진안의 작은 샘에서 출발하여 천리를 마다않고 굽이굽이 골 따라 흘러가며 지천에서 합류하는 천들과 토속문화를 포용하며, 임실, 정읍, 순창, 남원, 곡성, 압록, 구례, 하동, 광양 해운정을 향해 달려간다.
물줄기는 동에서 서로 흐르며 임실, 정읍에서 잠시 담아 냈다가 순창을 휘돌며 다시 남으로 묵묵히 흐른다. 한반도의 산맥들은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크고, 강은 생활문화와 밀접하여 농토와 평야를 구획하면서 산촌, 농촌, 어촌을 형성하고 유역문화를 일으킨다. 섬진강은 지역문화를 융합하며 수천년 역사의 주인공을 만들어 냈다. 물줄기를 공유하는 지역을 유역이라 하는데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타 유역과는 문화적 공감대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판소리(동편제, 서편제)와 농악(좌도, 우도)두레문화가 대표적이다. 문화는 산과 물의 흐름에 따라 지역 고유의 독창적인 문화가 형성 되어 왔으나 지금은 대중과 다수결에 의하여 국경 없는 문화에 떠밀려가고 있다.
△풍류정신과 사상은 전통문화로 계승 발전되어야.
정읍 풍류는, 백제 정읍사의 반주였던 음악이 궁중음악으로 자리 잡은 수제천(壽齊天)과 정읍 아양정에서 비롯된 김옥진의 소란춤이 정읍풍류의 중심이라고 할 만하다. 궁중 음악으로 더 잘 알려진 수제천은 본래 백제 가요 정읍사의 반주로 사용된 음악이었는데, 이후에 정읍사 가사는 빼고 음악만 연주되면서 수제천이 되었다.
아양정 풍류는 김기남이라는 이가, 1927년 아양정을 만들고 1928년 아양계를 조직하여 정읍의 풍류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비한 데서 비롯된다. 정읍의 수제천은 정읍 시민들이 ‘수제천보존회’를 만들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고, 김기남의 아양계 풍류문화는 정읍고택문화체험관 관장을 역임한 고혜선 대표가 아양계원 소란 김옥진의 춤을 복원하여 공연과 체험을 통해 대중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소란법무(笑蘭法舞) 춤사위를 복원하고 정읍 풍류문화의 전통을 문화체험으로 연계한 정읍 고택문화체험관은 제2의 아양정이며 정읍 풍류의 중심이었다.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는 K-컬처, 한류의 원형이 곧 풍류문화이다. K-컬처의 뿌리를 찾고 그 문화적 깊이를 더하기 위해 우리의 풍류문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신문화 수양은 인생전환의 과정이다.
땅은 고정되고 물은 땅위를 도도하게 흐른다.바람은 물위를 타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동서남북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으로 인간의 생활과 정신문화를 지탱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환웅은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와 3천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렸다.
우사(雨師)는 행정을 담당하는 문관으로 물의 흐름으로 농업과 현실 1차 산업을 주관하며 생활정치를 하였고, 운사(雲師)는 군무(軍務)를 책임지는 장군으로 과학과 공학으로 2차 산업을 주관하였다. 풍백(風伯)은 정신의 세계이며 제사장으로서 우사나 운사보다 가장 큰 형으로 3차 산업을 주관하였다. 고운 최치원의 풍류도는 현실에서 정신문화를 말하는 것으로써 인간의 정신수행과 수련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불교와 유교는 근본 뿌리가 다르지 않고 서로 상통하고 있다. 도교가 수입되어 오기 전에 우리 조상들은 이미 선교(仙敎) 수행을 하고 있었다.
△ 풍류도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룰 것인가?-정읍 무성서원과 천부경
풍류(風流)는 신교(神敎)의 다른 이름이고 9천여년(환인, 환웅, 단군이래) 이어온 한민족의 도가사상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최치원은 난랑비서에 풍류를 일컬어 “유불선 삼교를 포함한, 예로부터 내려오는 신령스러운 도”라고 했다. 풍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서 이것 저것 해 본다. 나는 느끼기를 한다. 무생물 느끼기, 식물 느끼기, 동물 느끼기, 사람 느끼기, 우주 느끼기, 생각태풍을 통해 집단무의식 느끼기, 멍때리기(생각하지 않기) 등을 경험했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무중력의 부유를 경험했다. 그러나 그것이 풍류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풍류도(風流道)의 風은 바람과 같이 어디에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신령스러운 신(神)의 조화로움이고 풍류의 다른 이름 신교는 그 신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최치원은 신교문화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을 묘향산에서 발견한다. 천부경 묘향산 적벽본이다. 녹도문 81자로 구성된 천부경은 환국시대부터 구전되어 오다가 배달국 시대에 녹도문으로 기록된 것으로 ‘삼일신고’, ‘참전계경’보다 가장 오래된 경전이다. ‘천부경’은 1부터 10이라는 숫자가 많이 나온다. ‘삼일신고’는 배달국 시대부터 인간과 우주만물에 대한 교화서로서 인성과 수행에 대한 지침서이다. ‘참전계경’은 배달국 시대부터 내려오던 한민족의 역사교과서인데 고구려 재상 을파소에 의해 8강령 366절목을 갖추고 있다.
천부경에는 하늘·땅·인간을 삼신(三神)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늘도 삼신, 땅도 삼신, 인간도 삼신이다. 천지인 속에 삼신의 생명과 신성과 지혜 광명을 표현하고 있다. 숫자로 표현된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이 그것이다. 11세 도해단군이 선포한 염표문(念標文)에 의하면 천부경에서보다 하늘과 땅보다 인간을 더 크게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부터 신의 광명에 통해 있으니 세상을 다스려서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라고 16글자로 제시하고 있다. “풍류의 실천방법이 홍익인간 하는 것이다”라고 선포한 것이다. 풍류도 즉 신교는 홍익인간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에 근거하여 국민교육헌장이 만들어졌고 초등시절 조회시간때마다 낭독시간이 있었고 모두 줄줄 외웠던 것 같다.
풍류도의 흔적들은 역사 속에서 찾아보면 아주 많이 있다. 5월과 10월경 여기 저기서 올라오는 온갖 축제문화를 볼 수 있다. 특히 10월 상달의 개천축제인 천제문화가 역사적 증거이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그리고 고려의 ‘팔관회’ ‘연등회’도 불교형식으로 제천행사를 한 것이다. 이 축제들은 천제 의식 이후 몇 일 동안 지속되었으며 음식과 술을 나누며, 오늘날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