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풍류속으로] (2)임실지역 풍류 ‘섬진강 풍류도를 찾아서’

김현종 · 2026-05-27 · 자유

진안을 돌아 임실지역에 도달한 섬진강은 관촌면, 임실읍(임실천), 신평면, 신덕면(옥녀동천), 운암면, 덕치면, 강진면을 적시며 본류를 만들고 있다. 또 갈담천 유역에는 청웅면과 강진면이, 오수천 유역에는 성수면, 지사면, 오수면, 삼계면이 위치한다.

섬진강은 산지를 흐르고 깊은 계곡을 형성하면서 곡류하고 있으며 유량이 풍부하다. 이러한 하천의 특성을 활용하여 운암제를 축조하고 이어 섬진강댐을 건설했다. 강은 섬진강댐에서 몸집을 키우며 장도의 여행 준비를 한다.

임실지역의 풍류

섬진강은 관촌에서 물이 맑고 경치가 아름다워 하늘에서 신선과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사선대를 낳는다. 신선 4명과 선녀 4명이 풍류를 즐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평면에서는 구석기시대 구석기인들의 살림터인 가덕리 하가유적과 상가 윷판형 암각화 유적을 남겼다. 하가유적은 5만여㎡규로모 석기제작소와 구석기인의 삶을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이 발견됐다. 또 상가 윷판형 암각화 유적은 윷판이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모두 28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점에서 천체관을 엿볼수 있다.

또 다른 임실지역 섬진강의 큰 지류중 하나인 오수천은 장수군 산서면에서 시작하는 본류와 임실군 성수면에서 발원하는 둔남천이 오수면 오수리에서 만나고 남원시 보절면에서 시작한 율천이 오수면 둔덕리에서 합류, 삼계면을 순창군 동계면을 거쳐 순창군 적성면에서 섬진강 본류와 합류한다. 이 오수천은 성수면, 오수면, 지사면, 삼계면을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경치가 절경인 오수천 주변에는 주민들의 화전놀이 장소, 아이들의 소풍 명소, 조선시대 구로회 어르신들의 아회(雅會) 장소인 구로정, 삼계석문, 단구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와같은 임실지역 풍류도중에서 역시 풍류의 진수는 필봉농악이 아닐까?

탐방자들이 찾은 풍류도 △풍류에서 ‘빨리빨리 문화’가 형성되었다… 풍류도인(風流道人)들의 흔적

백두대간은 민족의 정기가 흐르는 곳으로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두류산,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속리산, 덕유산, 장수군 영취산을 거쳐 남원 지리산으로 이어지며 한반도의 척추 역할을 한다. 1개의 정맥과 13개의 정맥을 거느리고 있다. 섬진강은 호남을 대표하는 강이다.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금남호남정맥의 줄기인 팔공산 데미샘에서 시작하여 하동, 광양만으로 연결되는 백제문화의 정맥이다. 데미샘은 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의 기운을 받으며 나온 민족정기의 샘이다.

수양제는 중국의 장강과 황화강을 남북으로 연결시키는 대운하를 만듦으로써 중국의 문화를 하나로 연결하였다. 이처럼 강은 인간과 문화를 밀접하게 연결하며 도시발전을 이루어 왔고 굽이굽이 유구한 역사를 묵묵히 지탱하였다. 섬진강을 중심으로 남한의 내륙문화가 발생하였으며 특히 백제의 두레문화는 농업과 함께 더블어사는 협동문화를 곡창지대에 만들어 냈다.

두레문화는 제철에 맞게 농사를 함께 해야 하는 호남평야지역이 가장 이상적인 두레문화 형성으로 안성맞춤이다. 농업 생산지는 적시에 파종을 해야 하는 농업의 특성상 “빨리빨리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한다.

농사꾼이 제철을 놓쳐 파종을 늦게 하거나 수확을 제때하지 못하면 철을 모르는 철부지라고 했다. 음식도 제철음식을 먹어야 건강에 좋은 것이다. 뭐든지 제때 해야 한다. 농자천하지대본 (農者天下之大本)은 조상님들의 큰 유산이다. 강은 상류와 중류 하류를 거치며 문화가 연속하여 물고 물리는 현상이 있다. 물길에 따라 강이 흐르며 물위로 풍류의 바람이 타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바람(風)은 바람 자체가 아니고 바람 같은 성질을 뜻하는 것이기에 문화는 서로 통하고 흐르는 것이며, 고을마다 장이서고 새로움과 새 소식, 새로운 물품이 수없이 교역을 하며 서로서로 동화 되어간다, 교역을 위해 만들어진 관통된 수로와 도로는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통로였으며 판소리와 유행가는 풀뿌리 서민의 애환과 가슴을 어루만져주었다. 이처럼 바람은 넓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통쾌한 성질이 있는 것이다. 또한 자연의 기운을 공급하거나 교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며 변화를 상징한다. 바람이 없으면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항상 변하는 것이 역(易)이다. 물따라 흘러가는 풍류가인의 노정에 각 지역의 풍류도인 들의 흔적을 공유하는 즐거움이 갈수록 더해만 간다.

농악의 진수 임실 필봉농악

진안 팔공산 데미샘에서 시작한 섬진강이 마령에서 마이산에서 내려오는 은천과 만나고 모래재에서 내려온 세동천과 합류하여 비로소 강다운 위용을 갖춘다. 성수에서 달길천과 회초천을 품고 관촌에서 외궁천과 상월천을, 신평에서 임실천과 지장천을 만나 몸집을 더욱 키운다. 운암을 거쳐 나래산, 묵방산, 무루봉 등 많은 산들을 만나 크게 휘돌아 요동치다가 회문산 용두봉과 필봉산에서 댐으로 막혔다.

섬진강댐은 일제 강점기인 1929년에 현 지점의 상류 2km 지점에 처음 만들었다가 1940년과 1948년 재공사를 거쳐 1965년에 완공 되었다. 정읍시와 임실군의 5개면 28개리를 수몰하고 아름다운 옥정호가 생겼다. 섬진강의 풍부한 수자원을 호남의 곡창인 정읍, 김제, 부안 등 동진강 수계로 보내면서 유역변경의 큰 낙차를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호남평야에 용수를 공급했다.

필봉산 너머에 필봉이라는 마을이 있다. 350여년간 이어진 전라좌도농악이 전승된 곳이다. 전성기 시절에도 60호 남짓 되는 조그만 산촌마을에서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이며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인 필봉농악이 전승된 것은 기적이다. 20~50여 명이 함께 해야만 가능한 농악을 공연한다는 것은 엄청난 정성과 경제적 토대가 필요하다. 도저히 필봉마을의 경제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결국 선각자들의 헌신과 희생이 예견되는 부분이다.

농악은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놀이문화로 각 마을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다. 다만 비슷한 유형으로 분류한다면 전라좌도농악, 전라우도농악, 영남농악 그리고 충청과 경기, 강원농악을 통칭하여 윗다리농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일찍이 농경문화가 꽃핀 전라도의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발전한 전라좌우도농악이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전라우도의 섬세하고 우아한 설장구와 전라좌도의 현란하고 아름다운 상쇠가락은 가히 예술이다.

필봉농악은 구한말 전설적인 상쇠 전판이의 계보가 청웅면의 이화춘에게 이어지고 다시 필봉농악 1대 상쇠인 박학삼으로 이어졌다. 2대 송주호로 거쳐 3대 양순용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6만여명의 전수생을 교육하고 일본과 중국 등 해외에도 제자들이 많아졌다. 지금은 그의 아들 양진성이 뒤를 이어 전통문화의 보존과 전승, 그리고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진력을 다하고 있다. 5월부터 9월까지 매주 토요일 20:00~21:30 펼쳐지는 필봉문화촌의 공연은 농악과 노래와 춤, 이야기가 어우러진 슬프고 아름답고 신명난다. 감동적인 환상의 섬진강 풍류다. 꼭 관람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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