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인물속으로] 15. 교산 허균 - 율도국 여기로구나
김현종 · 2026-05-27 · 자유
복지나라 율도국을 서원한 조선의 깃발
조개무지를 쌓던 우리의 선조들은 한 맛으로 명줄 이어오며 의식주가 투기대상이 아닌 생명존중의 복지 문화시대 열었다
인류를 위한 식품혁명의 경작으로 도농상생의 신산업시대에 복지나라 열망하며 미래세대를 주도하는 율도국을 상상한다
바다길 일러주는 등대처럼 세상길 밝혀주는 계화界火 등대 칠산 앞바다 수성당 할미 팔선녀를 수평선 너머 시집보냈다
해양문화 산업으로 세계사 바꾸어야 할 계화 등대 혼불터에 원효도 고운도 얼씨절씨묻어 움트기를 서원하던 새만금이다
왕정시대 임금도 법도 없는 자율의 복지국가를 꿈꾸었던 곳에 강릉의 교산 허균, 홍길동 앞세워 성계폭포 터 정사암 짓는다
왕정시대는 민주화혁명 민주시대에는 복지국가를 구상해보며 사람중심 문화로 인류를 율도국 백성으로 이끈 허균 있었다
우주 은하도 태양계 지구도 이미 새 궤도를 돌기 시작했기에 지구 우주선 인간 우주인의 역사현장을 살아갈 새만금 터에
세계청소년문화의 성지 조성 절실해져 새만금 방주를 띄우며 지구지킴이 되려고 서원의 깃발 들고 나와서 수인탑 세워보자
▲ 삶을 찾아서
박창보
허균(1569년~1618년)의 부친은 서경덕의 문인이자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동인의 영수 허엽이다. 강릉 생으로 초당은 허엽의 호이고 사대부로서 두부를 만들어 팔아 탄핵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허균의 이복형 허성은 통신사의 서장관이었으며 허봉과 허초희(난설헌)는 동복형제이다. 이들을 일컬어 5문장가라 하였다.
학문은 유성룡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시는 이달로부터 배웠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난데다 기억력이 남달랐다.
전란 중 과거에 급제하고 본격적인 관료생활을 하였으며 벼슬이 좌참찬에 이르렀다. 탄핵과 파면, 복직이 반복되었는데 끝내 사형을 당하였다. 조의제문을 지어 세조 찬위를 비난한 김종직을 위학자라 비판하였는데 세조가 주는 관직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일로 김종직의 학통을 계승한 사림파로부터 심한 비방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지방관 시절 애첩으로 한성부의 기생을 끌어들였는가 하면, 과거를 주관하며 조카와 사위를 합격시켰으며 불교에 심취하였다는 이유로 탄핵이 되었다. 사명당과의 친분관계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의 학문적 배경과 사상은 유불도를 아우른 것이었다. 또한 중국을 드나든 사신으로 천주교를 접하였으므로 최초의 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홍길동전은 서자 출신인 스승 이달의 처지와 재취한 모친의 소생으로 보이지 않는 차별에 대한 반감으로 썼을 가능성이 있다. 기득권 내에 머물지 않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했다. 조관 자리에 있을 때 부안기생 시인 이매창과의 우정에 관한 일은 조관기행에 기록되어 있다. 계축옥사와 인목대비의 폐모론에 연루되어 기자헌과 이이첨과의 갈등을 불러왔고 역모를 꾸몄다는 누명으로 마침내 능지처참을 당하였으니 향년 49세(1618년)였다. 아들들은 연좌되어 처형되었으나 딸과 조카들은 화를 면하였다. 허균의 사후 학문은 뛰어났으나 사람 됨됨이가 경박하고 자유분방하여 인륜과 행실을 어지럽히고 더럽혔다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율도국은 위도인가
홍길동전에서 묘사된 허균의 이상사회 율도국은 어디일까?
율도국은 현실이 아닌 수평선 너머의 외딴섬으로 이상향이자 낙원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율도국은 이보다 앞선 시기에 토머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와 흡사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상상 속의 존재하지 않는 곳을 뜻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 율도국의 무대가 부안의 위도였을 것이라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추정컨대 작가로 알려진 허균이 부안의 기생 이매창과 시우詩友로 서로 존경하며 오랜 기간 가까이 지냈으므로 인근의 위도를 율도국으로 비정하였는지 모른다. 다만 작품 속 홍길동이 온갖 고난을 딛고 병조판서를 제수 받은 후 조선을 떠나 오랜 시간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이 남방의 율도국이었다. 이곳은 이미 기반이 잡힌 왕조였으므로 정복 전쟁을 거쳐 새로운 왕조를 세웠고 말년에는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 율도국을 걸으며
김주원
허균과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 조선의 3대 여류시인 이매창의 자취를 찾아 위도로 떠난다. 위도를 가기 위해서는 격포항에서 50여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위도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나오는 일정인데 다음 날 배가 없을 것이란 말을 듣고도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다음 날 출항하는 배가 없었다. 섬 여행의 묘미쯤으로 생각한다.
위도는 여의도 면적의 4.8배 정도 되는 큰 섬으로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전막리에서 야트막한 산을 올라 위도를 아우르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능선을 한참 걸어보니 신선이 된 듯하다.
내려다보이는 마을 중 대리마을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대리마을로 하산하는데 키 낮은 나무들로 산길을 잠시 찾지 못하고 헤매며 겨우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대룡샘’을 마주하게 되었다.
대룡샘은 일 년 내내 마르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신비로운 샘으로 마을 주민의 무병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신비의 생명수이다. 여기에 전설이 있으니 내용은 이렇다. 오랜 옛날 이곳에서 물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절세미인 이씨 부인이 있었는데 이곳에 극심한 가뭄이 들자, 이씨 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서해 용왕의 아들 대룡이 마르지 않는 옹달샘을 만들어 선물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여인을 둘러싼 이야기는 풍부하다.
이곳 대리마을의 전설은 다양하다.
마을 뒷산을 올랐던 절충장군이 쇠주랭이를 질질 끌고 마을로 내려오자 대룡샘물이 흘러 작은 도랑이 생겼다고 하는 ‘절충장군 전설’이 있으나, 지금은 복개되어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
소리마을에서 치도로 가는 중간 위치쯤에 피동지 구멍이라는 작은 동굴에 얽힌 ‘피동지 전설’이 있는데, 성질이 고약한 피동지가 가마를 타고 가다가 깎아지는 듯 한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는데 구렁이로 변하였다. 피동지의 시체는 변산 쪽으로 떠내려가 수성당 귀신이 되었고, 그 후 지나가는 배들은 거친 파도를 일으키는 피동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전설은 거친 파도를 재우기 위해 인당수에 심청이를 바친 것과 통하는 이야기 같다. 위도에서 조기가 많이 잡혀 파시가 크게 형성되니 중국과의 교역이 매우 활발하여 중국 상선이 빈번하게 왕래했을 것이다. 조기를 잡기 위해 많은 어선들이 모여들었고, 위도의 부속 도서인 임수도 부근에 풍랑이 거칠어 난파하는 어선이 많았을 것이다. 거친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처녀를 사서 바다에 재물로 받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허균의 ‘홍길동전’은 신분 타파와 부패 정치를 개혁하려는 혁명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이상적인 국가 율도국의 출현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 복지나라 꿈꾼 메타버스 선구자
백승기
복지국가의 이상향을 꿈꾼 민주주의 선구자 허균의 호민론은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 이매창과 시감詩感을 나누며 우반동 정사암에서 율도국을 상상한다.
율도국 탐방 일행은 2박 3일 위도에 머물며 허균의 흔적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였고 결국 허균의 율도국 흔적을 여러 곳에서 찾았다.
위도는 부안과의 직선거리가 14km 정도이기에 부안 봉래산 월명암 낙조대에서 조망할 경우 소설 속 선망의 대상지로 충분하며, 갯벌과 벼농사의 흔적이 여러 곳에 있었다.
허균은 육미六味를 아는 미식가였으며 특히 부안의 해산물과 산채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위도진의 조기는 당시 영광굴비의 전초 기지이며 서해 3대 파시 중 한 곳이 위도이었고, 성수기에는 1만 척의 고깃배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등 17세기 해상 경제의 보고임에 틀림이 없었다.
허균은 율도국을 소설로 구성하였다. 율도국은 소설 속의 복지국가의 이상향을 제시한 현대판 메타버스 선구자이기도 하다.
아마도 허균은 위도를 모티브로 소설을 만들었을 것이다. 위도는 율도국이 아니다.
소설은 소설로서만 상상을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