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인물속으로] 07. 이성계 장군 - 마이산에서 금척을 받다

김현종 · 2026-05-27 · 자유

단군의 조선을 다시 세우고 싶었다

​새로운 소도 국가 조선의 재건을 주도했던 태상왕 이성계는 원의 부마국으로부터 민족사를 지키려 역사와 손을 잡는다

무너지는 고려를 조선으로 개명 후 유교를 통치 이념 삼아 신권정치로 기틀 잡으니 변방은 오래도록 고려인 줄 알았다

​한양 천도 역사는 무학 대사와 정도전 하륜의 지혜를 모으며 자좌 오향 사방에 홍인지문 숭례문 돈의문 홍지문을 세웠다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중앙에 보신각종 33번 크게 소리 내며 조선이 비로소 고조선 제석천의 단군 자손 천손임을 알렸다

​단군 조선 1,200여 년에 이어지다 기자조선으로 천여 년간 명맥은 유지했으나 BC 194년에 위만이 왕검성을 공격한다

밀려난 준왕이 남천하려는 배에는 새떼들이 같이 날아왔고 정착지 물색하다 반도에 이르니 까치들 함께 소도에 내렸다

​조선 47대 준왕 남은 민족혼을 부여잡고 익산에 남하하고 한漢이 아닌 한韓 왕임을 선포하며 주체성을 확립한다

민족이 남하할 때 새떼들이 같이 와서 까막까지라 했으며 익산 삼기 12개 마을 기세배놀이로 단군 문화를 계승했다

​삼한이 한국韓國이라 함은 바로 우리가 단군 후예임이니 만천하 천손 천명하며 천군天君으로 하늘에 제사 지냈다

준왕 남하는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三韓시대를 열었으며 그로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4국으로 다시 3국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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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太祖 이성계

​이성계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전국 영산의 산신으로부터 계시를 받고자 신무산 중턱에 단을 쌓고 기도하던 중 100일째 오색찬란한 봉황이 하늘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다.

부근 옹담샘 물로 제수를 만들어 천제를 모셨으며 샘 이름을 뜬봉샘이라고 했으니 여기가 금강의 발원지 장수군이다. 또 건국을 염원하는 이성계의 발자취는 순창의 만일사, 임실 상이암, 진안 마이산 은수사, 전주 오목대 등에 남아있다.

이성계는 1380년 진포대첩에서 패하고 갈 곳을 잃은 왜구가 함양·남원 일대에서 백성을 괴롭히자 출정길에 올라 남원 운봉면 황산에서 대승을 거둔다. 전주 오목대와 이목대에서 종친들과 잔치를 베풀며 대풍가를 읊으며 건국의 꿈은 짙어진다. 이어 고려 말 요동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 신진세력을 바탕으로 마침내 조선을 건국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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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새 시대를 여는가

​ 백승기

새 시대는 언제 오는가? 새 시대를 열 사람은 누구인가?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내려오는 500년 기다림이 여명 속에서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1380년(우왕 6년) 8월 금강하구에 진을 친 왜구는 최무선의 진포대첩으로 500여 척의 빈 배만 파괴 되었다. 왜군은 상주 성주 함양 등 내륙으로 도망친다. 내륙의 백성들에게 도륙질을 일삼던 3만여 명의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이성계는 그해 9월 전라도에 출정해 장수 용계리를 거쳐 남원에 입성하며 운봉 지리산자락 황산荒山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민초들의 영웅이 되었다.

국운이 다한 고려에 새로운 영웅이 등장했고 가물어가는 국토에는 단비가 내린 것이다.

​당시 이성계의 동지이자 멘토였던 무학 대사는 순창 회문산 만일사에서 새 시대를 기원하며 구국 기도중 이었다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기도처로 유명하기도 했던 임실 성수산 상이암은 구룡쟁주형의 천하 명지로서 이성계 또한 이곳에서 백일치성의 일화가 있다.

이밖에 부안 우반동의 성계폭포, 진안 마이산 은수사의 금척 및 일월오봉도는 전북이 새역사를 위한 꿈을 꾸고 신의 계시를 받으며, 민족의 역사를 만드는 과업을 완성하는 민족 성지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황산대첩 후 전주 오목대에서 전주이씨 종친들을 초청한 축하 연회장에서 대풍가를 노래한 이성계는 포은 정몽주로 하여금 위험한 인물로 낙인 되기도 했지만 새 희망을 원하던 이들에게는 구세주요 미륵이었다.

고려의 충신들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반역이라 하여 동조하지 않았지만, 고려는 오랜 기간 원나라의 부마국으로서 예속되었기에 만약 이성계가 없었다면 나라는 어찌 되었을까? 내우외환으로 기울어가는 원나라와 주원장이 창업한 신흥 강자 명(明)나라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쩌면 나라가 사라지는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수천여 년의 긴 세월 동안 개천이념인 홍익인간과 호국불교를 통해 역사를 보았고, 배달민족이라는 창을 통해서 삼라만상을 보았으며, 재세이화라는 렌즈를 통해서 우주를 바라봤다.

영토를 넓힌 자보다 백성의 가슴마다 희망의 날개를 심는 이들은 더 위대했다.

나를 고집하며 산자는 죽었고, 나를 역사에 비추어 기꺼이 죽은 자는 겨레의 얼이 되어 오늘도 살아있는 것처럼 역사는 강물이 되어 도도하게 흐르며 바다로 가는 것이다.

▲ 신무산 뜬봉샘에서 이성계의 운명은

​ 김주원

남한의 4대강에 드는 금강의 발원지인 장수 뜬봉샘을 찾아본다. 소재지는 장수읍 물뿌랭이길 10-18 이다. ‘뿌랭이’라는 단어는 무엇의 근원이 되는 ‘뿌리’와 같은 말인데, 친근감이 드는 것은 고향의 말이기 때문이다. ‘금강 물뿌랭이’인 장수읍 뜬봉샘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건국 신화가 깃든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

이성계는 국운이 다해 스러져가는 고려를 보며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기를 염원한다.

황산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 이성계가 장수 신무산 근처를 지나는데 때마침 무지개가 피어오르며 봉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찾아 들어간 곳에 맑은 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성계는 이 샘을 ‘뜬봉샘’이라 하고 백일기도를 드리며 지성을 다하니, “새 나라를 열어라”라는 하늘의 계시를 듣게 된다.

신무산에서 자고개를 지나 합미산성에 이르면 임실 성수산으로 이어지는 성수지맥이 흐른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힘에 이끌리며 성수산 상이암으로 말을 달렸을 것이다.

​신무산은 해발 897m 고원임에도 마르지 않는 뜬봉샘을 품었고, 이곳의 작은 물길은 흐르며 작은 천을 만나 종래에는 커다란 금강을 이루게 된다. 금강은 전북과 충남의 너른 평야를 촉촉하게 적셔 풍요로운 곡창지대를 만든다. 건국의 뜻을 더욱 다지는 근원을 뜬봉샘에서 찾게 되는 이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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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계와 위화도 회군

​ 신동만

고려 말 1388년, 요동정벌을 위해 출격한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한 건 조선의 건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고려 말기는 홍건적紅巾賊과 왜구倭寇, 몽골의 잔당인 북원과 여진족女眞 등이 사방에서 준동하는 혼돈의 시대였다.

명나라를 건국하고 원을 북쪽 몽골초원으로 밀어낸 주원장은 고려에 대하여 철령위鐵嶺衛 설치를 통보했다. 철령위 지역은 함경도 원산만 부근으로 비정 되는데, 이 지역에 대한 소유권을 명나라가 주장한 것은 고려에게 있어선 일전에 회복한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지역을 반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 지역이 고려의 영역이 된 건 명의 건국보다 2년 앞섰고 벌써 23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때문에 고려로서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우왕과 최영은 요동정벌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성계는 사불가론四不可論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반대하였다.

첫째, 이소역대기불가以小逆大其不可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슬리는 것은 불가하다.

둘째, 하월발병기불가夏月發兵其不可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셋째, 거국원정왜승기허擧國遠征倭乘其虛 온 나라의 군사들이 원정에 나서면 왜적이 허점을 노려 침입할 것이다.

넷째, 시방서우노궁해교대군질역時方暑雨弩弓解膠大軍疾疫 때가 장마철이라 활을 붙여놓은 아교가 녹고 대군이 전염병에 걸릴 것이다.

​이에 대한 최영의 반박은 명나라가 대국이긴 하지만 북원과의 전쟁으로 요동 방비는 허술하다. 요동을 공격하면 가을에도 경작이 가능하기에 군량 확보가 가능하다.

장마철이라는 조건은 명나라도 같으며, 명나라 군사들이 장마철에 싸우는 걸 더 싫어한다. 왜구는 정규군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요동은 기원전부터 수천 년간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한민족 계열이 지배했고, 이후 약 500년간 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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