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인물속으로] 06. 고운 최치원 - 천부경

김현종 · 2026-05-27 · 자유

천부경으로 다차산업 경영전략 수립

​지구는 지구 단골손님인 인간을 위해 일용할 양식을 내주려 담수 해수 만나는 갯벌에 조개 밭 일구고 조개무지 쌓았다

소금으로 물물교환 하는 상업의 길을 만들어 홍익문화 열고 땅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 초목을 내주며 신토불이 공생했다

​하늘이 자연을 경영함에 헛됨도 삿됨도 없이 해처럼 하라며 지구에 공기와 물을 가득 채우고 소금으로 맛 돋워 내었다

만물이 자유롭게 어울리는 조화력으로 생명력을 보존하기에 인간은 자유로운 조화력에서 세상을 아는 지성을 일깨웠다

​지구는 인간들이 입고 살고 자는 곳을 내주는데 협력하고 땅은 항상 치우침 없는 평등성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았다

인간은 땅에서 배운 평등 교화력으로 인생 무대 넓혀내고 땅의 평등원리로 희로애락 감성 일으키며 행복을 찾아간다

​인간은 의식주를 위한 공동생산과 생필품 유통이 필요했고 생명공동체 민족공동체가 분담하여 신산업협력체 만들었다

천지조화 평등사상에 의한 인간 경영학은 역사를 이끌었고 정치. 행정 의지는 천지인의 기초산업에 유지발전 견인했다

​민족공동체를 주도하는 역사문화 정신문화가 제 틀을 잡아 생명 존중에 의한 사람 중심문화 생명공학 자리 잡게 된다

기초산업 과학영농에 고차산업 무역구조 이루어 내야하고 국가요소인 영토 주권 국민 확립으로 다차 산업 자리 잡자

​​

고운 최치원(857~908?)은 발해와 각축하고 후삼국이 태동하던 신라 말에 활동한 대학자이다.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난 천재로서 개천의 용임을 증명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당으로 유학을 떠나 문장을 날렸으나 크게 쓰이지 못했다. 귀국하여 뜻을 펼치려 하였으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은 골품제로 인한 신분 때문이었다. 전국을 유랑하며 많은 흔적을 남겼으나 마지막으로 해인사로 들어간 이후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의 호처럼 외롭게 떠 있는 구름일런가.

​아버지 최견일은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최치원을 당으로 유학 보내며 큰 기대를 걸었다. 당의 관료를 지낸 최치원이 향수병을 해소하고 뜻을 펼치기 위해 귀국한 때가 28세 되던 해이다. 신라 말기의 혼란한 시기에 국고는 비어있고 수탈이 심해지며 살기 힘든 백성들이 여기저기에서 봉기하며 내란이 일어났다.

​최치원은 국가와 왕을 위해 능력 발휘를 하고자 하였으나 정읍 태수로 발령되어 지방을 떠돌게 된다. 또한 6두품의 신분으로는 주요 국정에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 풍류도를 배우다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에 언급된 풍류도란 신라의 교유한 전통인 현묘한 도를 의미한다. 유불선 삼교에 내포된 모든 생명과 접촉하면 이들을 감화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인간의 본성인 예, 불심,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결국 상고시대 환인, 환웅, 단군께 제사지내고 하나가 되고자 함이며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발로이다. 그것은 바로 화랑들이 학문과 무예로 심신을 연마하고 가무를 즐기며 명산대천을 벗 삼아 자연과 교화하는 과정과 같다.

​일제에 의한 한민족 문화의 말살과 서양의 외래문화가 범람이 되며 물질만능시대에 정신줄 마저 놓고 사는 요즈음 위축된 풍류도를 되살리는 노력이 전 세계에 K-컬쳐로 확산되고 있어 다행이다.

▲ 천부경의 비밀을 풀어야 한다

​ 백승기

한자 81자로 만들어진 우리 민족 최고의 경전으로서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짧은 경전이다. 암호화된 종이 한 장짜리 경전으로 마치 판도라 상자의 보물처럼 성현들을 통해 비밀리에 인수인계 되었으나, 좌우로 9자씩 짜인 암호 판이라서 감히 누구도 경문을 제대로 해석할 수가 없었다 한다.

천부경은 본래 고대 우리말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 말 고운 최치원에 의해서 한자로 번역되었으며, 81자 모두 한자로 되어 올바른 해독이 어렵고 문자의 틀에 갇혀 있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경전은 두 발로 일어서지 못하고 도사님들 지팡이에만 의지하고 있다.

​그동안 천부경을 해독하는 전문가들이 풀이에 도전하며 많은 저술을 하였으나 저자들마저 다른 견해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으며 민족 경전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다. 천부경의 구조는 비밀암호 자체다. 비밀을 푸는 열쇠가 한글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우주관과 대자연의 원리로 만들어진 뜻 말 우리글인 한글 속에서 ‘한울 한알 한얼’의 진리를 깨닫고 의미를 받아쓸 수 있어야 해석할 수 있다.

​하늘天과 땅地, 사람人이 하나임을 바탕으로 우리 한글이 창제되었다는 점을 확실하게 이해한 상태가 되면 천부경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있거나 없거나 모두를 포용하는 한울이 있다. 한울 안에서 ‘알’을 받아 ‘얼’주머니로 감싸고 사람이 태어난다. ‘한울’안에서 태어남은 자기의식을 가지고 다른 것과 구별되는 존재가 된다.

​한울을 바탕으로 태어나고 한울로 돌아가므로 한울과 나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인 한과 나 즉 ‘하나’인 것이다. 따라서 최초의 개체인 나는 ‘하나’이다. 시간은 물질에 의해서 시한부로 나타날 뿐이다. 시간은 시점도 없고 종점도 없는 것이다. 시간은 본래 없다는 결론이 천부경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무시무종관無始無終觀 천부경을 푸는 비밀 열쇠다.

​​​

▲ 무성서원과 최치원

​ 신동만

신라 말 유학자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태산(정읍의 옛 지명) 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고 떠나자 선정에 감사하며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생사당生祠堂을 창건하여 태산사泰山祠라 하였다. 고려 말쯤 태산사가 훼손되었다가 조선 초 1483년에 정극인이 세운 향학당이 있던 지금 자리로 옮겨 중건되었고 1844년에 중수되었다.

​숙종 때는 '무성서원武城書院'으로 사액賜額을 받았다. '무성'이란 의미는 공자孔子의 제자인 자유가 무성 현감 때 선정을 베풀며 현악에 맞춰 예악으로 다스려 태평세월을 만들었다는 고사에 연유했다.

무성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毁撤 되지 않은 47개소 중 한 곳으로 호남에서는 유일하다. 을사조약 뒤 1906년 이곳에서 면암 최익현과 돈헌 임병찬이 의병을 일으켰다. 현재 이곳에는 최치원을 비롯하여 신잠申潛, 정극인丁克仁, 송세림宋世琳, 정언충鄭彦忠, 김약묵金若默, 김관金灌 등 7명의 명유名儒를 배향하고 있다.

​고운 최치원은 설총과 함께 문묘에 배향된 신라인 2명 중 한 명이다.

무성서원을 비롯하여 함양 백연서원, 경주 서악서원, 안동 용강서원, 서산의 부성사, 포천의 청성사, 영평의 고운영당 등에 배향되어 있다. 그리고 최고운전이라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있고, 현대에는 그가 당나라에 있을 때 근무했던 중국 양저우시楊州市에 ‘최치원 기념관’이 있다.

​고려의 대문장가 이규보와 이색도 최치원을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았다. 유불선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 자유인이었다. 학문도 높았지만 치세의 역량도 뛰어나 백성들의 칭송을 들었으니 가히 넘사벽이다. 라말여초의 혼란한 시대 상황에 부패한 관리의 탐욕이 백성들의 피와 살을 도려내는데도 고운은 참으로 달랐다. 배들 평야를 품은 태산은 물산이 풍부한 부촌富村이었다. 조선말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으로 동학혁명이 일어난 시대 상황과 매우 비슷했을 것이다. 왕권은 미약해지고 지방 호족과 관리의 힘은 커져 반란과 폭정은 빈번해지고 백성들의 삶의 피폐는 극에 달했으리라.

▲ 민족의 경전 천부경

​ 박창보

천부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있으므로 확실한 문헌에 기초하려 택한 것이 서우 전병훈 선생(1857~1927)의 정신철학통편이다. 북경에서 1920년에 발간됐고 그 책에 천부경이 들어 있다.

서우는 순종즉위 직후 관직을 버리고 중국 광동으로 건너가 정신연구에 몰두한 분으로 도교 수련을 통해 중국 지성인들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단군교의 애국지사 윤효정이라는 분이 천부경을 전해주었는데 1919년으로 추정된다. 1916년 계연수가 발견한 묘향산의 천부경은 최치원이 옛 비석에서 발견한 신지의 전문으로 스스로 해석한 81자를 석벽에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우와 비슷한

목록으로 · 뱅기노자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