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역사속으로] (4)동구릉 탐방기

김현종 · 2026-05-26 · 자유

조선의 혼을 찾아서 태조는 조선 건국의 명을 천지에 고하며 역사를 열었고 하륜은 장풍득수 명당을 찾아 산과 물의 형세를 짚었다 동구릉 능역에 바람과 물의 숨결을 품어 왕조 터 세우며 역사의 품에 정치와 철학의 기틀을 굳건히 심어 놓았다 북에서 내려온 장대한 산맥은 왕조 기운 크게 안아주고 용은 남쪽 아차산까지 이어져 5백년의 역사를 품어냈다 능역은 하늘의 뜻을 땅에 담아 왕조의 정통성을 세우고 건국 정치철학을 온천지의 이치 속에 품어 두게 하였다 서구 피라밋은 석재를 인위로 쌓아 절대 권위 드러내고 조선왕릉은 자연과 어우러져 그 품 안에 위용을 보였다 인위적 위용 아닌 조화 미학에 능역은 숨을 쉬며 있고 천지인 삼합 사유는 음양오행으로 승화되어 공존 한다 임금의 무덤은 능역을 넘어 조선의 혼을 담는 그릇으로 백성 안위와 왕조의 영속을 기원한 정신적 중심 되었다 풍수는 왕조 정치철학 근간이자 정통성의 상징성 되고 능은 천명을 받든 역사서로 남아 왕조 위엄을 전해준다 유네스코 등재로 세계는 우리 가치 새롭게 확인하였고 인류문화유산 기록물은 길이 보존해야 할 보배 되었다 산과 물과 건축 어우러진 능역에 서면 저 절로 느끼듯 조화의 정신은 과거를 넘어 미래로 빛 이어가고 있다

공간 배치와 풍수, 조선 왕조의 세계관을 담다

동구릉은 조선 왕조의 정치·철학적 세계관을 담아낸 풍수의 결정체다. 하륜은 고대 풍수의 기본 원리인 ‘장풍득수형(藏風得水形)’에 입각해, 산세가 바람을 막아 기운을 머금고, 물길이 흐르며 생명을 불러오는 형국을 찾았다. 능의 입지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산맥이 능역을 감싸고, 그 맥이 남쪽의 아차산까지 이어지며 왕조의 기운을 크게 확장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거대한 석재를 인위적으로 쌓아 올려 절대 권위를 드러냈다면, 우리의 능은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서 절대자의 권위를 표현했다. 이는 곧 자연과 인간, 하늘과 땅이 합일하는 동양의 천지인 삼합(天地人三合) 정신을 실천한 결과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이러한 가치 때문이다. 동구릉은 자연 속에 스며든 건축, 풍수적 지혜가 어우러져 장례 공간을 넘어 조선 왕조의 정치철학과 세계관을 구현하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동구릉이야말로 한국적 미의식과 동양적 사유가 만나는 지점이며, 세계유산의 정수로서 조선 왕조의 정신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살아 있는 역사서라 말하고 싶다.

동구릉, 조선 왕조의 역사를 품다

동구릉은 조선 왕조의 왕릉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표적 유적지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중심으로 총 아홉 기의 왕릉이 모여 있으며,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왕실의 역사를 아우르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꼽힌다.

1대 태조의 건원릉을 중심으로 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현릉, 14대 선조와 의인왕후·계비 인목왕후의 목릉,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휘릉,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 20대 경종의 의 비 단의왕후의 혜릉,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원릉, 24대 헌종과 효현왕후·계비 효정왕후의 경릉,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의 수릉 등 총 9기의 왕릉이 있다.

건원릉은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 제도를 본받아 조영되었으며, 이는 조선 왕릉 제도의 원형으로 평가된다. 주요 특징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린 조영 방식이다. 울창한 숲과 구릉지에 어우러져 모든 능역이 배치되었으며, 홍살문·정자각·신도비 등 제례 건축물 또한 잘 보존돼 있다. 각 능은 조영 당시의 시대적 특성을 반영해 왔기에 왕릉 축조 양식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로 남아 있다.

2009년에는 조선왕릉 40기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능이 보여주는 자연과 인공의 조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주이씨의 장례문화 지속성, 그리고 유교적 왕실 의례의 집약성 등을 높이 평가했다.

삼태극 민족문화를 되살리며

홍살문은 신성하거나 예와 격을 갖추어 경건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 의미가 있다. 정 중앙에는 삼태극이 자리 잡고 있다. 왕릉의 정자각 신계의 문양도 태극인데 궁궐 정전과 침전, 돌계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묘, 사대문, 누각, 향교나 서원의 대문, 사찰, 예복, 부채, 북 등에서도 발견된다. 유교 문화권에서 주역의 팔괘와 음양 이분법에 따라 태극에서 2수 분화된 1, 2, 4, 8, 64의 수리 체계를 따르므로 공적인 장소에서는 이태극을 사용했다. 왕릉과 같은 사적인 공간이나 노장, 불교, 무속 등 민간 부문에서는 삼태극이 쓰였다. 삼국시대에 태극은 백제의 목간과 신라의 감은사 주춧돌에서 발견된다. 미추왕릉에서 출토된 장식 보검 손잡이의 문양은 삼태극이다. 군영에서도 삼태극을 사용하였는데 삼도 수군 조련도와 해진도가 그 예이다.

한민족은 예부터 숫자 3을 중요시하였다. 천부경은 하나에서 셋으로 분화되는 일석삼극의 논리로 1, 3, 9, 81의 3수 분화 체계를 보여준다. 환웅이 환인에게 받은 천부인은 거울, 검, 방울의 세 가지였으며 풍백, 우사, 운사를 비롯한 무리 또한 3천 명이었다. 최치원의 현묘지도인 풍류도 역시 유불선 삼교를 아우르는 고유한 정신세계를 담고 있다. 천지인을 삼재라 하였는데 예컨대 천지가 그려진 일월오봉도 앞에 임금이 앉아야 비로소 삼재가 완성되는 의미가 있다. 또한 음양오행과 더불어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로 삼았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타이틀은 원방각을 상징적으로 그렸다. 그 외 삼원론, 삼칠일, 삼세번, 삼족오, 삼신, 삼일철학, 삼작, 삼성각, 삼지창, 삼복, 369게임 등 다양한 풍속과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운요호 사건 후 조선은 불평등한 조약을 맺으며 국기 제정을 위해 어기를 바탕으로 태극기를 만든다. 송대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조선으로서 사괘와 이태극으로 국기를 만들었지만 큰 아쉬움이 남는다. 이후 몇 번의 개정을 거쳤지만, 원래는 5,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다. 팔괘를 그린 태호복희씨는 동이족 삼황오제 중 으뜸으로 배달국 5대 태우의환웅의 열두째 아드님이기 때문이다. 복희여와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되어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동구릉에 주무신다는 선조 前 上書 구리 동구릉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명성과 가치를 품은 동구릉을 2007년부터 자주 드나들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구리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고구려 사업과 태극기 사업 등 주요 시정을 기획·홍보하는 일이 주요 업무였다.

동구릉에는 ‘17위의 왕과 왕비가 주무신다. 여기서는 몸가짐도 되도록 단정하려 애를 쓰고, 언행도 조심해야 되었는데, 특히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이라는 어로와 ‘제향 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라는 향로는 밟지 않으려 나름 신경을 썼다.

동구릉엔 참 희한한 능이 한 기 있다. 그렇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묘 ‘건원릉(健元陵)’이다. 봉분은 억새를 쓰고 있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가 고향을 그리워해 ‘갈대를 심으라’는 유언을 남겨 그리됐단다.

건원릉 탐방 뒤, 누군가 선조의 발자취를 밟으러 가자했다. 그 넓은 능원에 주무신다는 선조를 보러.

최근 전남 해남 출신의 양성현 작가는 징비록의 저자 유성룡의 실체를 밝히는 저서를 펴냈다. 양 작가의 역사적 고찰을 어느 정도 헤아렸고, 암군 선조의 아둔한 짓을 잘 알고 있는 터라 팡진 걸음을 옮겼다.

동구릉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은 왕숙천으로 나간다. 그리고 한강으로 합류한다. 강화도를 벗어난 강물은 바다로 흐른다.

선조여, 임진왜란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장본인이여! 님께 묻습니다. 동구릉에 발 뻣고 편히 주무십니까? 그럴 자격이 있습니까?

그날 동구릉 밖 주차장 입구에 개똥이 있었다. 동구릉 안에도 개똥이 있었다.

숲길과 능로, 살아있는 생태와 문화유산 경복궁의 동쪽, 구릉산(옛 검안산)에 자리 잡은 조선왕들의 9개 능이 모여 있는 동구릉에서 조선 500년의 장대한 세월을 무더위 속 살랑살랑 불어대는 바람과 함께 걸어본다.

무더위를 잠시나마 피할 겸 동구릉 역사문화관에 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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