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전북을 걷다] 13. 군산시
김현종 · 2026-05-26 · 자유
단기 4356년! 개국 이념을 재조명하자.
대 자연이 지구를 운영함에 어느 삿됨과 편애가 없듯이 나라를 세우거나 자식을 대함에도 그릇됨이 없어야 한다.
인류가 천지인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데 어긋남이 없으며 하늘의 순리에 막히지 않고 도리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민족은 해와 더불어 태어나 해의 운행을 기본으로 삼고 태양 문화를 만들어 한울 한얼 정신을 바탕으로 살았다.
단일 혈통을 이어가며 평화공존을 생활철학으로 삼으니 한울 사상으로 천지인이 하나로 어울려 나라를 세웠다.
인간 이상과 이하에 신이나 다른 의미에 손을 잡지 않고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개국 이념으로 단군 시대를 열었다.
오직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기위해 신시에 나라를 세우고 인간 으뜸의 인본주의와 평화주의를 기본지표로 삼았다.
우리 배달민족은 나라와 역사를 경영함에 하늘의 도리와 땅의 소중함을 간직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소중히 지켰다.
이는 천지인 삼합의 한민족 겨레임을 천명하는 전통으로 개국 이념을 재조명하여 새역사 경영에 거울로 삼아보자.
▲ 진포대첩비
우리나라 최초로 최무선 장군이 개발한 화포로 1380년(고려우왕 6년) 진포(지금의 군산)에서 왜선 500여척을 무찌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군산하구둑 부근에 진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이다. 1999년 군산 개항 100주년을 기념해 건립한 조형물로 돛을 상징하는 날개모양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왜구를 무찌른 화포의 화구가 하늘을 향해 있다. 진포대첩으로 배가 소실되자 육지에 상륙한 2만5천여명의 왜군이 돌아갈 길을 잃고 육지를 돌며 우리 백성을 괴롭히고 노략질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은 아니러니하게 다가온다. 또 진포대첩비 부수 조형물중 자전거와 자동차 모형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 씁쓸함이 묻어났다.
▲ 뜬다리 부두(부잔교)와 진포해양테마공원
뜬다리 부두는 간조와 만조의 수위 변화가 심한 군산항 내항에 대형선박을 접안할 수 있게 조성한 시설이다.
부잔교는 뜬다리와 부유식 함체로 구성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쌀 수탈의 아픔이 그대로 남아 있다.
▲ 옥구향교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이다. 이곳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역 학생들에게 유교를 가르쳤다. 옥구향교는 태종 3년에 이곡리에 건립되었다가 성종 15년에 상평리로 옮겼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인조 24년에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 옥구향교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 균형잡힌 모습을 갖추고 있다. 현재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봄과 가을에 이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옥구향교내에는 최치원이 독서했다는 자천대를 비롯해 문창서원, 단군성묘, 세종대왕 숭모비, 비각 등이 옥구향교를 중심으로 인접해 있다.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 설립된 국립교육기관"
▲ 최치원과 자천대
통일신라 말기의 문장가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들어와 노닐며 독서했던 누각을 자천대라 한다.
바위산 옆의 연못이 항상 붉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자천대에는 두 개의 항아리가 있었는데 최치원이 태수를 지낼 때 항아리 안에 비밀문서를 감춰 두었다고 한다. 돌 항아리를 끌어당겨 움직이면 바다에서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쳤기 때문에 가뭄이 들면 주민 수백명이 큰 밧줄로 항아리를 끌어당겨 비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사신들이 옥구에 올 때마다 이러한 모습을 구경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힘들어하자 정자를 허물고 항아리도 땅에 묻었다고 한다.
▲ 은적사
전라북도 내에 있는 사찰 가운데 가장 오래된 백제시대 사찰이다. 천방사, 선림사 등으로 불리었던 은적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군산시 소룡동 설림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613년(백제무왕 14년, 신라진평왕 35년) 신라 원광법사에 의해 창건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네 차례에 걸쳐 중창, 중건이 있었다. 대웅전에 봉안된 석가여래 삼존상은(전북유형문화제184호) 1629년(인조 7년)에 조성한 불상으로 금산사 인근의 절에서 옮겨왔다고 전한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우에서 협시하는 형식이다. 본존석가여래는 사각형의 엄숙한 표정에 오뚝한 콧날, 당당한 어깨, 균형잡힌 몸체, 안정감 있는 무릎자세 등 신체의 비례가 뛰어나고 법의의 주름 표현이 아름답다. 은적사 석가여래 삼존상은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군산 고군산군도
군산 고군산군도는 총 63개의 섬으로 이뤄진 섬의 군락이자 천혜의 해상공원이다.
고군산군도 진입 초입에 위치한 무녀도는 갯벌체험과 해안 도보여행을 선호하는 캠핑족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무녀도 옆 쥐똥섬은 물이 빠지면 걸어서 건너갈 수 있는 작은 섬으로 '작은 모세의 기적' 이라고 불리운다.
고군산군도의 가장 큰 섬인 신시도는 마을 구석구석을 장식한 벽화로 전체가 포토존이 되며, 선유8경중 하나인 월영봉의 단풍과 국립 자연휴양림 중 최대규모라는 신시도자연휴양림이 유명하다.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선유도에서는 선유봉에 올라 섬의 군락이자 기암괴석들로 아름다운 고군산군도의 절경을 내려다보며 즐기는 신선놀음은 물론이고, 섬 전체를 이륜바이크 등으로 돌아보는 슬로우 힐링 여행이 가능하다.
선유도 바로 옆 장자도는 대장도와 한 섬처럼 연결되어 대장봉까지 오를 수 있으며, 대장봉에서 바라보는 고군산군도의 풍경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백승기
비 내리는 오후 고운 최치원 선생의 문창서원을 찾았다.
우리 일행은 자천대 紫泉臺 누각에 올라 선생께서 한역한 민족 경전 천부경 天符經 81자를 꺼냈다.
「一始無始一 析三極 無盡本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一積十鉅 無匱化三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大三合
六生七八九 運三四 成環五七 一妙衍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太陽 仰明人中天地一 一終無終一 」
「하나로 시작하되 시작이 아니고 하나를 나누니 삼극이 되네.
천하의 근본은 다함이 없고 하늘은 하나로 양이 되네.
땅은 하나에서 둘로 나눠 음이 되고 사람은 하나에서 셋이 되어 양이라네. ~ 중략
쓰임은 변하되 근본 뿌리는 변하지 않음이요
사람이 하늘과 땅에 하나 되니 하나로 끝나되 끝이 아니다.」
박창보
고려 우왕시기는 개경 가까이까지 왜구가 창궐하여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최영과 이성계의 분전으로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1380년 8월에 500여척의 대규모 함대가 군산에 출몰하여 밧줄로 묶어 진을 치자 도원수 심덕부, 나세와 최무선이 최초로 화포를 사용하여 모두 불태운다. 이른바 진포대첩이라 하며 이때 살아난 왜구가 사근내역 沙斤乃驛을 거쳐 최종 집결한 곳이 황산이었다. 이성계가 출전하여 승리함으로서 백성들의 영웅이 되고 마침내 창업의 꿈을 꾸게 된다. 전북에 이성계의 이동경로와 흔적이 남아 있는 모든 곳을 이성계루트라 칭해 보았다. 그 시발은 군산이며 만일 이때 패전했다면 오늘날 한민족의 역사는 크게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김주원
걸역팀의 여정 말미에 도착한 군산의 역사를 찾아보니 슬픔이 밀려와서 눈물이 난다.
고려말, 쳐들어온 왜선 500척을 무찌른 최무선의 최초의 함포해전인 진포대첩 승리의 역사를 지닌 자랑스런 군산. 일찍이 이런 훌륭한 화기가 있었음에도 자주국방의 필업을 이루지 못하고 기어이 일본에게 침략을 당했다. 먹거리가 풍요로웠던 호남의 땅은 일본 수탈의 1번지가 되어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설움과 고통에 몸부림쳤다.
해방이 되고 경제적 부강을 이루긴 했으나, 그것도 미국과 일본의 허용범위까지다. 오늘날 '전시 작전권'을 갖지 못한 대한민국은 천문학적 국방비용을 지불하면서도 확실한 자주국방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잊지 말자 "역사는 흐른다"는 말을!
강승균
군산은 새만금의 시작점이다. 군산은 신선이 노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