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전북을 걷다] 10. 진안군

김현종 · 2026-05-26 · 자유

미완의 사상가 정여립 선생의 정신은 살아있다.

​입법부는 역사 미래를 위해 국민 예지를 토론해야 하고 행정부는 국가 현안 문제를 실행 하는데 전념해야 한다.

사법부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아 축을 세워야 하는데 급조된 민주정치는 진일보하려 역사 진통을 앓고 있다.

​정당은 선거 때마다 당명을 바꾸며 오합지졸 자처하고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는 사정에 동참하여 아수라 된다.

저마다 개인. 집단이기에 자유스럽지 못한 역사의 현장 세상만사 풀어야 할 국민숙제는 난제로 누적되어 있다.

​멈추지 않은 현안숙제들로 역사가 중병을 앓고 있는데. 그 누가 있어 역사를 치유하고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외침에 의한 국난극복을 위해 외세와 맞서 싸워야 했던 애국지사 애국열사들 이라면 지금은 어떻게 하였을까?

​나라 안에 말이 달라 뜻을 펼치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천지인 28자 한글을 창제했던 세종과 집현전이 있었다.

천하공물 天下公物 하사비군 何事非君 역사 정신으로 대동계세상 꿈을 그린 죽도에 정여립 사상은 살아있다.

​ ▲ 태고정

​1990년대에 진안에 댐이 건립되면서 물에 잠기는 많은 문화재와 유적을 발굴조사하고 옮기게 된다. 그중 태고정은 지금의 자리인 수천리 언덕 위로 이전되었다. 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용담호의 풍광이 매우 아름다웠다. 원래 약산약수에서 따온 이락정이라는 이름의 정자였다가 주변에 소나무가 많다하여 만송정으로 바뀌었다. 그 후 현종 7년(1666)에 현령 홍석이 정자를 확장 건축 오늘날의 태고정으로 바꾸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총독부가 국가 재산으로 강제 몰수하여 공매 처분하였는데 임소환이 250원에 사서 기증했다. 우여곡절이 많은 정자이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송시열 등의 글이 남아 있어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정자옆에 여의곡지석묘라는 안내문과 함께 몇 기의 고인돌이 놓여 있었다. 마찬가지로 수몰지역에서 옮겨온 것으로 약 2500년 전인 4~5세기경에 축조된 것이라 한다. 이중 1기는 묘역에 단을 덧붙여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아마도 매우 희귀한 사례로 용담식 고인돌이라 칭하기도 한다.

청동기시대를 포함하여 구석기시대의 진그늘 유적과 신석기시대의 갈머리 유적도 폭 넓게 발굴되었는데 전라북도 내륙에서 진안에서만 유일하게 분포되어 있다 한다.

​ ▲ 천반산 · 죽도와 정여립

​천반산은 모양이 소반과 같이 생긴데서 유래하나 원래는 천방산이었다. 산대나무가 자생하는 산길을 올라 맞은편에서 바라보니 맑은물이 휘돌아 한반도의 지형을 좌우로 뒤집어 놓은 듯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물길과 경계를 이루는 섬 같은 작은 산이 있는데 죽도라 한다.

1970년대에 농경지 개간을 위해 육지로 이어지는 병풍바위를 폭파하여 물길을 텃으나 실패하였다. 천반산은 군신강상론을 부정하며 대동세상을 꿈꾸던 정여립이 군사를 조련하였고 마침내 역적으로 몰려 관군과 대치하며 은신하기도 한 곳인데 끝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자결인지 타살인지의 여부와 혁명가로서의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

​ ▲ 진안성당 어은공소

​진안성당 어은공소는 진안의 첫 천주교 본당으로 신도들이 박해를 피해 모인 신앙촌이다.

공소란 신부가 상주하지 않은 작은 성당을 지칭하는데 1888년 전주본당에서 관할하다 2년 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돌너와 지붕에 아亞자 모양으로 서양과 한옥의 건축양식을 조합하였고 남녀 구분을 위해 중앙을 칸으로 막고 출입문도 따로 냈다. 국가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 "공소란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성당을 지칭한다"

​​ ▲ 수선루

​보물로 지정된 수선루는 숙종 12년(1686)에 연안송씨 4형제가 부친과 친구들이 신선처럼 바둑과 풍류를 즐기고 늙지 않기를 기원하며 세운 2층 누정이다. 역암지질에서 형성된 타포니의 규모가 커 동굴같은 구멍이 생기고 그 속에 누정을 지은 것이다. 들어가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는데 누군가 음주가무를 즐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잠시후 마주친 일행과 대화를 나눠보니 후손들로 가끔 들러 관리하며 놀기도 한다는 것이다. 부러움에 수선루에 올라 땀을 들이며 정면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세월을 잊은 듯하다.

​ "신선처럼 바둑과 풍류를 즐기고 늙지 않기를 기원하며 세운 2층 누정"

​ ▲ 마이산도립공원

​마이산은 프랑스 여행안내서인 미슐랭 그린가이드에서 최고 점수인 별 3개를 받은 명소로 유명하다. 약 3천800만년 전 신생대에 한반도 내 북동방향 단층이 움직이면서 진분지에 압축력이 가해져 역암이 솟아올라 지금의 마이산이 형성됐으며, 지질학적인 가치가 높아 국가지질공원 인증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마이산 표면에 형성된 타포니 현상과 암마이봉 봉우리 남쪽 기슭에 세워진 80여개의 석탑군은 관광객에게 신비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관광자원이다.

마이산 탑사는 지난 2020년 미국 CNN방송이 선정한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33곳' 중 한곳으로 꼽히기도 했다.

봄철 마이산을 찾는 관광객들은 전국에서 가장 늦게 개화하는 벚꽃길의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 또한 매년 4월 마이산 남부 입구에서 석탑군을 잇는 2.5km의 벚꽃터널 길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아울러 마이산북부 관광단지에 가위박물관과 미로공원, 마이돈테마파크, 돼지문화체험관, 명인명품관, 생태공원 등 인프라가 구축돼 관광객들이 여러 체험을 할 수 있다.

​ ▲ 마이산 명인명품관

​조선 건국이 시작된 마이산, 후백제가 터를 잡은 전주 남고산성, 멸망한 백제 부흥운동이 시작된 부안 은적암 등 전북은 왕조의 도시다. 특히 진안 마이산은 왕의 스토리가 가장 많은 곳이다.

조선왕조 창업의 명분을 제시하는 등 조선 개국과 연관이 깊은 마이산은 조선시대 내내 신성시 여겨졌고, 그렇게 마이산은 '소원을 이뤄주는 산'으로 명성을 떨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역고드름(고드름이 거꾸로 맺힘) 현상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다. 마이산 두 봉우리는 왕이 쓰던 모자로 알려진 '익선관 翼善冠'의 형태를 신비스럽게 꼭 빼닮았다.

​익선관은 임금이 편복 便服으로 정무 政務를 볼 때 쓰는 관을 일컫는다. 모양새는 꼭대기가 턱이 져서 앞턱은 낮고 뒤턱은 높으며, 검은 빛깔의 사 紗나 나 羅로 싸고 꼭대기 뒷부분에 두 개의 뿔이 뾰족하게 올라와 있는 형태로 흡사 마이산 두 개의 봉우리를 형상케 한다. 신이 빚은 걸작품인 마이산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명인명품관은 부채, 한지, 유기, 청자 등 5천여 점의 우리 전통을 지켜내고 있는 국내 예술 명인들의 작품이 전시돼 마이산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부채동, 자수동, 한지동 총 3개동으로 구성돼 있는 '마이산 명인명품관'은 마이산 북부 옛 상가 단지 평범한 식당가를 리모델링해 2017년 11월 25일 개관했다.

이곳은 전통명인들이 전통문화예술 명품을 만드는 과정을 시연, 홍보하는 곳으로 탈바꿈,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와 힐링의 공간으로 ‘문화 보물창고’로서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진안마이산명인명품관 내 방치됐던 200평 가량의 소형공간을 개관 5년 만에 기획전시관으로 리모델링해 지난 20일부터 첫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다. 명인명품관에서 상설기획전시가 매월 열리게 되면 진안 관광산업 활성화의 나비효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이명기 관장은 문화계에서 폭넓은 인맥과 함께 '능력 있는 문화시설 경영자'로 정평이 높다.

그는 적자를 면치 못했던 전주한옥마을 공예품전시관 및 완주 대승한지마을과 부안 영상테마파크 등을 위탁 경영하여 모두 흑자 전환시킨 '마술의 손'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 마이사

▲ 신이 빚은 걸작품인 마이산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명인명품관

부채동, 자수동, 한지동 총 3개동으로 구성돼 있는 '마이산 명인명품관'은 마이산 북부 옛 상가 단지 평범한 식당가를 리모델링해 2017년 11월 25일 개관했다.

이곳은 전통명인들이 전통문화예술 명품을 만드는 과정을 시연, 홍보하는 곳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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