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전북을 걷다] 08. 무주군
김현종 · 2026-05-26 · 자유
무주엔 무주다움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반만년 유구한 역사라고 스스로 자랑하면서도 배달겨레의 역사문화를 뿌리조차 망각하며 살고 있다.
수입종교·수입문화에 종속되어 민족정신·민족문화는 역사의 뒤안길에 내던지고 물질자본 경제만 바라본다.
중국에 가면 중국이 있고 인도에 가면 인도가 있으며 다민족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 가더라도 미국이 있다.
반만년 이어온 단일 민족국가로서 K-한류를 자부하는 한국에는 무엇이 있으며 무주에는 또 무엇이 있는가?
더 늦기 전에 한국에는 반드시 한국이 있어야 하겠고 무주는 나제통문 구천동 승지마을 무주가 있어야 한다.
관광이 도시 경쟁력으로 고객 유치경쟁이 치열한 시대 무역 전쟁에 살아남으려면 국가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명체의 본능을 풍수지리로 알고 정감록은 부안, 남원운봉, 무주무풍을 십승지지로 했다.
공간이 있어 의지하던 절대방위 해바라기 풍수를 깨고 공간을 만들어 활용하는 상대방위 슈퍼바이저로 가자.
▲ 칠연의총
덕유산 서쪽이 칠연계곡이다. 용추폭포를 지나 통안마을 끝 송정골 입구에 칠연의총이 자리하고 있다. 구한말 일본군과 싸워 순국한 의병들의 무덤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맺어지고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운동이 일어났다.
무주지역에서도 시위대 출신인 신명선 의병장을 중심으로 박춘실, 김동신, 문태서 등이 협력하여 덕유산을 근거로 무주, 진안, 용담, 금산, 장수, 순창, 거창 지역에 진출한 일본군에 대항했다. 40여명으로 출발한 신명선 부대는 150여 병력으로 일본군의 위협으로 성장하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제압코자 했다.
이따른 전투로 피로가 쌓인 신명선 부대는 잠시 칠연계곡 송정골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밀고로 인한 기습에 의해 전원 순절하고 살아남은 한 명의 의병에 의해 추후 지역민들과 함께 시신을 묻었다가 후대에 새로이 수습하여 단장하고 칠연의총이라 명명했다.
조상들의 한과 넋을 위로하는 묵념으로 무주 일정을 시작했다.
▲ 나제통문과 이름없는 고분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이루던 지역으로 설천면 소천리와 두길리를 연결하는 석모산에 위치한 암굴이다. 일제때 무주에서 김천이나 거창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굴을 뚫고 다리를 놓아 차량과 사람이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는 설천굴로 불리우다가 이 지역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나제국경이었다는 역사적 유래를 찾아 나제통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문을 사이에 두고 주민들의 말과 풍속이 다르다는 점이 특이해 양 마을의 소통의 역사가 짧음을 반증하고 있다.
나제통문 부근 이남마을에 이름없는 조상등의 무덤이 있는 이남 고분이 있다. 무덤을 알리는 어떠한 석물도 없어 칠연의총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나제국경이었다는 역사적 유래를 찾아 나제통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십승지 무풍 승지마을
물산이 풍부하고 병란과 전란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정감록에 소개된 십승지이다.
십승지란 숨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땅으로 전쟁이나 흉년,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로 일컫는다.
▲ 적상산과 조선왕조실록 사고지
적상산성은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대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산 정상부에 치마를 두른듯 깎아지른 높은 절벽지형으로 인해 백제시대부터 산성이 자리했다. 후대 고려말 최영 장군이 탐라(제주)를 침범한 왜구를 소탕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며 험준한 지형을 보고 왕에게 상소하여 산성을 수축했다는 설이 있다. 서북쪽으로는 자연절벽을 이용하고 동남쪽으로 석성을 쌓아 재래식 전투로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었다.
거란의 세 차례 침입과 왜구의 침입 때도 인근 수십 군의 백성들의 피난처로 군사 주둔지로 활용된 기록들을 보면 고려조 이전에 이미 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조선조에서는 조선왕조실록과 왕가의 족보를 보관하는 사고와 선원전이 산성 안에 들어섬으로 국가의 주요시설로 격상 되었고 무주현도 도호부로 승격 되었다.
적상산사고지유구는 임진란에 모두 전소되고 전주에 남아있던 왕조실록을 포함하여 새 인쇄본과 함께 1614년 사고를 짓고 1633년에 모두 옮겨 1641년 선원록을 봉안하니 선조로부터 광해군, 인조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쏟아 사고의 역할을 했다. 일제에 의해 장서각으로 옮겨졌다가 한국전쟁중 부산으로 대피시키는 도중 안타깝게도 실록이 사라졌다. 유구는 원래자리에서 양수발전소 건립에 따라 1992년 현재의 장소로 옮겨진 곳이다.
▲ 안국사
고려 충렬왕 시기에 월인화상이 짓고 조선 인조 때 적상산 사고로 지정된 후 사고를 방비하기 위한 호국사를 지었다.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었으나 호국사와 함께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적상산 양수발전소 건설 때문에 호국사지의 위치로 옮겨졌다. 보물인 영산회상괘불과 세계 각지의 부처를 모신 성보박물관이 있다.
▲ 무주 반디랜드 & 태권도원
반디랜드 곤충박물관에서는 반딧불이를 비롯한 2천여종, 1만7천여 마리의 전 세계 희귀곤충 표본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곤충관이다. 또한 고생대와 신생대의 화석, 150여 종의 열대식물, 그리고 수 천마리의 나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계절 별자리 관측이 가능한 천문과학관과 숙박 가능한 통나무집, 친환경놀이터와 물놀이장 및 썰매장을 보유한 사계절 전천후 생태체험 힐링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태권도원은 국제경기와 체험, 수련, 교육 등 태권도에 관련된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 유일의 태권도 전문 공간이다. 태권도 종주국의 자부심에 걸맞는 최대 규모(231만4천㎡)를 자랑한다.
태권도 체험 수련 공간, 박물관, 체험·공연프로그램 등 관광 일정이 체계화 돼 있어 거점 관광지로 자리잡고 있다.
이와 함께 백운산의 한 봉우리에 자리잡은 태권도원 전망대는 관광지로서의 요소도 갖추고 있다.
백승기
안국사 템플스테이에서의 황홀했던 별 밤의 아름다운 추억과 보살님께서 정성스레 준비하신 아침 누룽지탕이 절로 생각난다. 적상산 안국사는 산 정상 9부 능선에 위치한 사찰로서 경관이 아름다운 자연사 박물관이며 산속 미술관이다. 새로운 개장을 준비 중인 성보박물관에는 전 세계 불교관련 예술품으로 가득하다. 이른 새벽 펼쳐지는 해와 구름과 바람의 향연은 우주의 조화로 출렁이는 하늘의 바다가 되어 평선 너머로 사라지곤 했다. 사람의 건강은 진맥으로 혈류를 진단하여 길흉화복을 예견하고 우주의 건강은 바람 風의 운기로 미래를 본다고 한다.
김주원
무주 첫 여정은 안성면 공정리 산6번지에 위치한 '칠연의총'으로 정했다. 칠연의총은 을사조약(1905), 정미칠조약(1907)으로 촉발된 항일 의병자들의 무덤이다. 망국의 조약을 반대하고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선열들의 혼이 담긴 곳. 일본은 총칼을 앞세워 나라 곳곳을 침탈하고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던 암울한 시대. 모든 것이 열악했던 의병들은 활, 쟁기, 죽창 등 전투무기라고 볼 수 없었던 도구로 목숨바쳐 나라를 지켜내고자 했다. 이곳 칠연계곡에서 장렬히 싸우다 죽어간 영혼들의 유해를 1969년 이고장 향토예비군들에 의해 다시 수습, 성분, 묘역 정리가 되어 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칠연의총'이라 하였다. 이 외에도 유구한 역사를 함께 엮어온 유적들이 많은 무주이다. 이를 문화자료집 <터전에 담긴 얼>에 정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무주의 높고 푸른 창공을 생각하며 안국사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신동만 무주는 신라 영역이었던 무풍과 백제 영역이었던 주계를 통합한 지명이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분기점으로 높은 산들로 둘러쌓인 진안고원의 북쪽지역이다.
또 충남 금산, 충북 영동, 경북 김천, 경남 거창 등 5개도의 접경이다. 남한 국토의 중심부로 경부고속도로와 대전통영고속도로가 지난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일교차가 심하여 과일과 곡식이 작고 단단하며 당도가 높고 맛이 좋다.
무주는 보물 제1267호 안국사 영산회 괘불탱, 국가명승 제55호 제56호인 일사대와 파회ㆍ수심대, 사적 제146호 적상산성, 천연기념물 제249호 무주 오산리 구상화강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