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전북을 걷다] 07. 정읍시

김현종 · 2026-05-26 · 자유

현묘한 도 道 풍류도가 있었다.

​찬란하게 이어온 우리의 민족사는 외세의 강압에 눌려 여러 번 역사단절의 아픔과 역사 치매를 감수해야 했다.

반만년 유구했던 민족의 고대사가 축소 왜곡 당했으며 해방 이후 민족사관의 혼돈과 가치의 혼란을 일으켰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사람중심 생명문화 꽃피웠고 유구한 민족사를 지킨 배달민족 문화국임을 자부한다.

역사의 재정립으로 바른 문화가 무엇인가를 알게 하고 조상의 예지와 문화의 이해로 문화강국의 토대가 되자

​하늘 땅 인간 天地人이 하나되는 인류의 생명터에서 허균은 임금도 법률도 걸림없는 자유가치와 평화로서

율도국을 상상하며 민주주의 혁명서 홍길동을 지었고 해원상생 평등의 모태인 모악산에 민족정기를 심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꺼져가는 민족혼의 불씨를 살리려 천지인 삼합정신으로 봉기하고 혁명의 등대가 되었다.

아사달의 후예 최치원 선생 강토에 뿌리내린 홍익인간 한민족의 현묘한 도 道 풍류 風流의 유산을 세웠다.

​ ▲ 증산 강일순 생가터

정읍시 덕천면에 위치한 증산 강일순(1871~1909) 생가터. 약소민족이 제국주의 침탈에 신음하고 민중은 부패한 지배세력의 학정에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하늘과 땅의 질서를 새롭게 고치는 길 밖에 없다고 판단 후천개벽사상을 설파한다.

강증산 선생의 후천개벽사상은 동학에서 얻은 민주정신에 바탕하고 종교적 내세를 추구하는 민중에게는 희망과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또한 증산의 가르침은 일제 강점기 여러 민족종교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강증산 선생의 마을 입구에 지금도 향약의 정신 '덕업상권', '과실상규', '예속상교', '환난상휼'이란 생활지침을 현판으로 걸어두었다. 강증산 선생의 동네에서만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 "후천개벽사상은 동학에서 얻은 민주정신에 바탕하고 종교적 내세를 추구하는 민중에게는 희망과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 황토현 전적지

​​1893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대항해 일어난 동학농민군은 1894년 고부관아를 습격한다. 10여일 만에 해산했지만 사태의 원인을 농민군에게 돌리자 전봉준 지휘아래 보국안민, 제폭구민을 내세워 다시 봉기한다. 농민군은 여세를 몰아 백산으로 진출하고 관군과 농민군이 황토현에 대치, 농민군이 대승을 거둔다.

황토현 승리로 기세가 높아진 농민군은 정읍, 흥덕, 고창, 무장 등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전주까지 입성한다. 이후 우금치 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하여 동학농민혁명이 막을 내리지만 혁명이 보여준 반외세·반봉건 개혁정신과 민족자주정신, 평등사상은 민족독립운동과 민주정신으로 이어진다. 동학농민혁명으로 사망자가 약 3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는 해설사의 목소리가 울분과 떨림이 교차하며 전해진다.

무명의 혁명 전사자들께도 술 한 잔 올리고 전봉준 장군의 묘단(시신 수습을 못하여 유품으로 조성됨)에도 술 한 잔 올렸다.

▲ 전봉준 장군 생가 터

​동학농민군의 지도자였던 전봉준이 살던 초가집으로 1878년에 지어졌다. 부엌, 큰방, 가운데 방, 끝방 등의 일자형으로 남부지방 일반적인 민가 구조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전봉준은 이곳에서 농사일과 서당 훈장을 지내며 살다가 동학농민혁명으로의 횃불을 당기게 된다.

▲ 지사리 고분군

​영원면 지사리에 위치해 있는 전라북도 기념물로 삼국시대 백제의 구덩식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4세기 말에서 5세기기초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무덤군의 봉분의 크기는 직경 15~27m이고 높이는 1.7~3.6m인데 원래의 높이는 최대 6m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 내장산 국립공원

​정읍 내장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조선 8경의 하나라고 기록된 대표적인 명산이며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과 태조어진을 정읍의 백성들이 내장산의 용굴로 이전해 지켜냄으로서 역사기록의 단절을 막아낸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천혜의 비경을 가진 내장산은 추사 秋史 김정희가 수도했다는 벽련암을 비롯해 좌선을 앞둔 승려들이 목욕재계하고 천일기도를 드리는 금선폭포, 천연기념물 단풍나무, 굴거리 나무 및 비자림 군락 등이 있다.

내장산 주변에는 숙박시설인 생태탐방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탑, 내장산 단풍생태공원, 내장산 조각공원 등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관광특구진흥사업의 일환으로 내장산 겨울빛축제 개최를 통해 야간관광 활성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 ▲ 조선왕조실록 보존터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실록은 4부를 간행하여 춘추관, 성주, 충주, 전주사고에 보관했다. 임진왜란 때 춘추관, 성주, 충주사고 실록은 모두 소실되고 전주사고 실록만 선비들의 노력으로 내장산으로 옮겨져 보존된다. 정읍에 살던 안의 · 손홍록 등은 1592년 실록을 내장산 은봉암으로 옮기고 어진은 용굴암으로, 다시 실록과 어진을 비래암으로 옮겨 1년여 동안 보관하다가 정읍현으로 옮겼다.

한편 지난해 한 스님의 방화로 불타버린 내장사 대웅전 자리는 큰 법당이라고 쓴 간이 건물만 남아 있어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선조들과 커다란 대조를 자아내고 있다.

​ ▲ 무성서원

​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이 정착하면서 사림 세력이 지방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서원은 성리학을 연구하며 인재를 교육하는 강당이 있는 강학공간, 스승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 있는 제향공간, 유생들이 시를 짓고 토론을 벌이는 유식공간으로 구성됐다.

무성서원은 신라 말 태산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푼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해 건축됐다. 1615년 건립하여 태산서원이라 칭하다가 1696년 무성서원으로 사액 되었다. 무성서원은 최치원을 비롯해 신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선생 등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무성서원의 규모가 경상도의 병산서원, 도산서원에 비해 아담한 규모이긴 하지만 건축 미학적으로 볼 때 최고라는 평가다. 건축물의 채움과 비움 곡선 및 배치는 바람과 햇빛 그리고 주면 경관과의 조화를 통하여 단연 으뜸으로 꼽는다. 2019년 다른 서원 8곳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김명관 고택, 권번 이전지

​김동수 6대조인 김명관이 1784년에 건립했다.

전형적인 상류층 가옥으로 대지 중앙에 ㄷ자집 형태의 안채와 중문간채가 튼 ㅁ자집 형태로 자리잡고 있으며 안채 남쪽에 일 一자형 별당채, 북쪽에 작은 사당이 있다.

중문간채 동쪽에는 사랑채가 있고 그 남동쪽으로 문간채가 있다.

사랑채는 이 집에서 가장 화려한데 부엌이 독립되어 특이하다.

김명관 고택과 함께 권번의 명맥 잇기에 나선 고택문화체험관(권번문화예술원)이 전통문화의 신명과 풍류를 전승시켜 나가고 있어 최치원에서 비롯된 선비사상과 풍류문화, 정읍사로 대표되는 가사문학, 태산선비문화 등의 계승 발전이 기대된다.

선비문화와 권번문화를 연계시켜 발전 시킬 아이디어를 모아 나가자는 다짐이다.

백승기

민족정신문화의 원류로 부족함이 없는 정읍에서 역사현장 탐방을 동지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것 같다.

탐방중 정읍시에 거주하는 전북도민일보 주재기자님의 맛있는 탕수육과 김희욱 후배의 따뜻한 쌍화차 대접으로 우리 일행은 모처럼 지친 피로를 풀기도 했다. 감사드린다.

시들어가는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려 하늘의 조화, 땅의 교화, 사람의 치화를 바탕으로 여러 신흥종교의 모태가 된 강증산선생의 생가 탐방을 시작으로 동학의 전봉준장군 단시 참배와, 천부경 81자를 한역한 고운 최치원 선생의 무성서원 방문은 역사의 큰 부침이 되었다.

고즈넉한 오후 고택문화 체험관에서 사무장의 차 대접을 받으며 권번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고혜선 교수의 열정과 정읍시의 문화적 복원 설명에 우리 일행은 큰 박수를 보낸다.

신동만

"달아 높이곰 돋아샤 멀리곰 비추시라" 전주시장으로 행상 나간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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