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전북을 걷다] 04. 임실군

김현종 · 2026-05-26 · 자유

꿈을 꾸고 나온 이성계의 리더십

나당연합의 침입으로 백제 고구려는 역사가 되었다. 당은 안동 웅진 계림대도독을 설치하여 통치하였고

대조영은 발해를 건국하고 신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우리나라 역사에 진정한 통일신라시대는 있었는가?

​스스로 국경이 되겠다고 서원하고 나선 서당인들이 얼씨 절씨를 심으러 다니는 품바 각설이로 맞섰고

당이 물러갈 때 순정 수로부인은 목숨 같은 정조로 신라 독립의 한 송이 진달래 꽃 희생양이 되었다.

​고려는 몽골의 침략으로 강화천도 피난 38년 동안 육지에서는 7번 침략으로 28년간 전쟁을 치렀다.

죽지 못해 목숨만 부지하던 시대 아픔을 종식하고 부마국으로부터 독립하려 이성계는 조선을 세웠다.

​세상은 꿈나라 세상만물이 다 제 꿈을 꾸며 산다. 다만 인간 꿈은 생각을 바꾸고 운명도 바꾸며 산다.

중국사와 긴 고리 끊으려 새로운 조선을 부흥시킨 이성계의 리더십은 성수에서 조선의 꿈을 그렸다.

​ ▲ 관촌 성미산성

임실지역의 첫 일정은 관촌 성미산성으로의 걸음이었다.

가야국 출신 김유신과 함께 통일신라 대업을 이룬 태종 무열왕이 661년 백제 부흥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430.5m의 성미산에 517.5m 규모로 백제 무왕때인 605년에 축조되었다. 661년 신라대군이 부안에서 철수하다가 정읍 고부에서 백제 부흥군에 의해 후발대가 패하자 성미산성에서 2천여명 백제 부흥군과 전투를 해 몰살시켰다는 기록이다. 이 기록을 볼 때 660년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패해 나라를 잃었으나 백제 군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대대적이며 조직적으로 저항을 했음을 역사의 현장이 대변해 주고 있다.

비록 왕은 항복했으나 문화민족적인 자긍심 높은 백제유민들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라군은 도독부를 설치해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당나라군 야욕에 맞서 고구려 백제 유민을 신라 귀족으로 편입시키는 화해전략으로 연합해 당나라군을 몰아냄으로써 고구려 · 백제 · 신라 삼국이 한민족 핏줄로 하나되는 전기를 마련하려 했지만 그 같은 타협을 거부하고 끝까지 항쟁하다 성미산성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백제유민 전사들의 충절과 영혼이 함께 묻힌 곳이다.

여기저기 허물어지고 일부 복구된 성벽 흔적 위에서 백제 부흥군 명복을 비는 묵념을 올렸다.

​역사의 굽이 길에서 백제 부흥을 꿈꾸다

스러져간 성미산성 2천 전사들께 삼가 바칩니다.

"타협을 거부하고 끝까지 항쟁하다 성미산성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백제유민 전사들의 충절과 영혼이 함께 묻힌 곳이다."

​ ▲ 성수산 상이암 ​

상이암은 임실의 주산인 성수산에 위치한 암자로 원래는 신라말 도선국사가 세운 도선암이었다.

9마리의 용이 구슬 하나를 놓고 다투는 형국으로 8명의 왕이 나올 길지라 전해지는 곳이다.

도선국사가 왕건을 찾아가 성수산이 임금을 맞이할 천자봉조지상 天子奉朝地像의 성지로 기도를 권해 마침내 계시를 받아 왕이 되었다 한다. 조선 건국자 태조 이성계도 무학대사의 권고로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려 마침내 조선 창업을 하고 삼청동 三淸洞 이란 친필 비석을 새겼으며 상이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상이암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의병장 이석용 장군이 항일운동 근거지로 삼자 일제가 소실시켰으며, 6.25 한국전쟁 때 소실되는 수난을 겪었다. 현재의 모습은 1958년 재건했다.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려 마침내 조선 창업"

▲신평면 호랑이석상

신평면에 위치한 임실의 수호신으로 칭하는 호석상. 높이 90cm, 길이 130cm의 해학적인 호피문양이다.

호석상은 둥글고 납작한 얼굴에 한껏 미소를 띠우고 있으며 몸통은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이다. 절구를 닮았다고 하는데 곡식이 절실하니 그런 마음이 담겼을 것이다.

또한 민속화에 나옴직한 호랑이석상은 가뭄 기근에 시달리던 300년 전 시대상을 일깨워 주며 서로 돕고 우애롭게 살라는 숭고한 뜻을 담고 있다. 한편으로는 슬픈 미소로 보였는데 둥근 수형의 얼굴은 비가 오길 빌고 있는 간절함이 들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처럼 빼어난 석상예술품이 논길을 한참 걸어 외진 풀숲 소나무 아래 묻혀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 "호랑이석상은 가뭄 기근에 시달리던 300년 전 시대상을 일깨워 주며 서로 돕고 우애롭게 살라는 숭고한 뜻"

▲ 신평면 진구사지 석등 ​

보물 제267호 석등은 백제 멸망 10년전 고구려에서 망명한 승려 보덕의 제자 적멸과 의융에 의해 세워졌다는 진구사 절터에 자리 잡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약 5.18m 크기로 화엄사 석등(국보 12호, 6.4m)에 이어 두 번째 크기이다. 상륜부에 해당하는 보주를 포함하면 우리나라 석등 중 가장 클 것으로 추정된다.

정교한 연꽃 문양, 코끼리안구로 화려하게 장식한 받침대가 떠받드는 8면 직사각형 화창에 비단 드리운 석등이 불을 밝히면 저 멀리 고려수도 개경까지 비추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올 정도로 진구사 위세가 대단했다는 해설사의 설명이다.

절 입구 당간지주는 물론 주춧돌 놓인 흔적마저 찾아볼 수 없어 석등이 딴 곳에서 옮겨왔다는 해설사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 "석등이 불을 밝히면 저 멀리 고려수도 개경까지 비추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 상가 윷판형 암각화

신평면 가덕저수지 옆에 위치하고 있는 임실 상가 윷판형 암각화는 그리 크지 않은 2개의 바위 위에 윷

판형 표현물 23점, 윷판형 패턴 16점 등 모두 39점의 윷판형 암각화가 있다. 총 90여개의 성혈판이 파여 있어 국내 최대 규모이다. 북두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과 28수를 형상화한 윷판이니 선사시대 천손의 후예답게 천문을 관측하고 후대로 내려오며 기록한 흔적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경사면과 중첩된 구멍의 형태로 보아 실제 윷놀이가 벌어졌을지 의문이고 뭔가를 기록한 비는 어디론가 떨어져나가고 이끼에 묻혀 보존이 잘 되지 않아 아쉬움이다.

​ "천문을 관측하고 후대로 내려오며 기록한 흔적이 아니었을까"​

​백승기

임실군에서 2만년 전 구석기 유적지와 고대 천문연구의 윷놀이 암각바위가 발견됨은 전북 고대사 연구에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민족 문화유산은 방치하지 말고 신속한 발굴 및 재조명을 통하여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해야 한다. 정부와 유관단체는 소의를 벗어나 역사치매의 틀을 깨트리고 문화강국으로서 대의를 펼쳐야 할 것이다.

​ 박창보

안타깝다. 좋은 호재가 많음에도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임실치즈라는 타이틀 외에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고장이지만 역사를 테마로 묶어서 관광지로 개발하면 많은 발전이 예상된다. 섬진강가의 후기 구석기 유적부터 국내최대의 선사시대 윷판형 암각화, 삼국시대의 격전지, 고려와 조선의 창업 설화 등 시대를 이어 4차 산업혁명 이후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면 좋을 것 같다.

​ 신기섭

관촌 성미산성, 진구사지 석등, 호암리 호랑이바위 등을 둘러보며 문화재를 풀속에 방치해 놓으니 문화적 가치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과거와 달리 삶의 여유를 찾은 요즈음 임실군이 군민들에게 문화군민의 자긍심과 내일의 희망을 심어주려면 조상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푸르른 폐허의 옛터에 방치해 놓을 게 아니라 오늘의 자산으로 입체적으로 되살려 미래비전을 창출하는데 적극 활용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 김주원

성수산 상이암은 역사드라마 '정도전' 촬영지로 구룡쟁주의 명당이라고 한다. 산이 높지 않다고 여겼는데 뜻밖에 깊은 계곡과 수려한 산세에 금방 마음을 빼앗겼다. 태조 이성계가 염원을 빌었던 곳.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향해 강한 기운을 내뿜는듯하여 강한 기운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찾는 명당임을 알게 되었다.

​ 최보람

성수산 상이암은 고려 태조 왕건과 태조 이성계의 전설과 관련된 장소이다. 산의 정기와 상이암의 기를 받아 잘 된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신비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상이암의 옆에 암벽을 타고 올라가면 산의 경관을 바라볼 수 있고, 명상을 할 수 있는 바위가 있다. 치열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태조도 이곳에 와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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