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동학속으로] (최종)걸어서 동학속으로 자문위원 세미나
김현종 · 2026-05-26 · 자유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아 역사적 현장을 직접 탐방하며 동학의 의미를 되새기고 혁명의 정신을 깨닫고 계승하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전국에 동학의 현장을 찾아 장장 10,000여Km의 대장정을 마감하고 자문위원들과 23일 뱅기노자 전북지부 사무실(지산아카데미 2층)에서 세미나를 가졌다.
사회 - 지난 3월 정읍시청에서 발기인 행사를 갖고 전국 동학 농민혁명의 현장을 탐방했습니다. 지난 6월 6일 정읍 황토현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 가진 중간 세미나에 이어 기획탐방을 마치고 마감 세미나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자문위원들의 진솔한 의견과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먼저 백승기 자문위원님께서 탐방의 배경과 의미, 기획의도를 말씀해 주세요.
▲백승기 자문위원 130년 전, 부패와 무능으로 얼룩진 시대. 관료들은 기생충처럼 외세에 기대어 민초들의 삶을 갉아먹었고, 아전문화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냈습니다. 그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동학은 한 줄기 빛이자 희망이었습니다. 동학은 단순한 종교가 아닌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미륵이요, 백성들에게는 절망 속에서 메시아와도 같았습니다. 동학의 빛은 쉽게 꺼지지 않았습니다. 동학도들은 민족의 불씨를 끄려는 자들과 그에 동조한 기생충 같은 세력들에 맞서 싸우며 민초들의 눈물과 울분으로 저항의 횃불을 들었습니다. 그 불씨는 민중의 힘을 깨우고, 자주와 평등이라는 혁명의 정신을 심었습니다.
이번 탐방은 그런 동학의 숭고한 숨결을 따라, 역사의 발자취를 되짚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긴 여정이었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역사 탐방을 넘어,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의 담론을 초월하여 국민 사학의 새로운 장을 열고자 했습니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열쇠입니다. 동학의 정신은 지금도 우리에게 변화를 촉구하고, 희망의 씨앗을 심어줍니다. 이번 여정이 동학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다음 세대에게 희망의 불씨를 전달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동학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은 곧 민족의 미래를 밝히는 일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대장정을 이어온 이유입니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아 역사적 현장을 직접 탐방하고 있는 자문위원들 사회-제주와 전라남도를 제외한 전국을 탐방했습니다. 김세용 자문위원님 3월 발기인 행사부터 충청도.경상도 강원도 경기.서울 까지의 여정을 말씀해 주세요.
▲김세용 자문위원 1차 탐방은 3월 1일~2일 정읍 전봉준 생가터, 김개남 생가터와 묘소, 최경선 생가터와 묘소, 남원 교룡산성 은적암터, 2차 탐방은 4월 6일~7일 정읍 고부, 고창 무장, 3차 탐방은 5월 4일~5일 김제 원평, 부안 백산, 4차 탐방은 6월 6일과 7일 정읍 황토현, 전주 초록바위, 5차 탐방은 7월 6~7일 완주 삼례, 대둔산, 전주 전라감영, 동학농민혁명기념관, 6차 탐방은 8월 2일~3일 충청남도 논산, 부여, 공주, 계룡산, 우금치 등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7차 탐방은 9월 7일~8일 서울, 8차 탐방은 10월 5일~6일 경주, 울산9차 탐방은 11월 2일~3일 충북 보은, 경북 상주 예천을 탐방했고 10차 탐방은 12월 7일~8일 강원 원주와 홍천에서 실시했습니다.
사회-동학농민혁명의 유적지나 역사적 현장이 훼손되거나 방치된 곳이 많았음을 실감했습니다. 김주원 자문위원님이 상세히 소개해 주세요.
▲김주원 자문위원 기억에 남는 곳을 언급해보죠. 전봉준 장군이 학령기에 살았던 곳으로 원평이 지척인 감봉면 계봉리 부근입니다. 김덕명, 최경선, 김개남 등 동학의 혁명 주체와 두터운 교분을 쌓았던 곳입니다. 김개남 장군과 최경선 장군의 생가터는 이미 다른 주민이 거주한지 오래인 듯, 작은 팻말을 세워놓았는데 집 벽에 기대어져 있거나 대문에 붙여놓아 너무 허술하게 관리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창하게 꾸며놓지는 못해도 당당함까지 잃어서야 되겠습니까!
전봉준의 생가터로 2001년 고창군에서 1억여 원을 들여 죽림리 당촌마을에 복원하였으나 제대로 된 고증없이 잘못되었다하여 이네 철거되어 역사적 인물의 생가 복원 실패 사례를 남겼다하네요.
크고 화려함보다 역사적 가치를 충분히 보존하고,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는 효율적 복원과 관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사회-아들과 함께 탐방에 나선 이주원 자문위원님 자라나는 후손들이 배워야 할 동학혁명정신을 말씀해 주세요.
▲이주원 자문위원 아들과 함께하며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동학의 평등과 인간다운 삶을 사는 세상, 그리고 자주독립의 정신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걸어서 동학속으로 좌담회 사회-동학농민혁명정신이 3.1 독립운동 정신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번 탐방에서 더 실감했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해서 신동만 자문위원님이 평가해 주세요.
▲신동만 자문위원 동학혁명의 1차 봉기가 탐관오리 척결 등 내부 개혁이 주목적이었다면 2차 봉기의 기치는 척양척왜였습니다. 경복궁을 침입하여 고종을 감금한 일본군의 만행에 항거한 반외세를 위한 창의였죠. 자연스럽게 항일독립운동으로 이어져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가 중심이 되어 3.1운동을 거국적으로 일으켰고 그 정신이 상해임시정부로 이어졌습니다. 답사 때 3.1운동의 발원지 우이동 봉황각에서의 하룻밤이 생생히 기억남네요.
사회- 역사는 실수를 반복한다 고 합니다. 박창보박사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동학혁명에서 배우는 역사 교훈은 무엇일까요?
▲박창보 자문위원 한민족의 역사에서 망국의 이면에는 이민족의 침략에 이어 지배층의 갈등과 분열, 그리고 배신의 역사가 반복되었습니다. 결국은 다양한 형태의 민군과 의병에 의해 수습되었으며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켰습니다. 동학혁명은 19C 말의 조선에서 신분제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불만을 표출한 사건입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와 외세의 압력에 대한 저항이 농민들에 의해 발생하였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대일항전기에 독립운동의 뿌리가 되었으며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를 교훈으로 현대 사회가 직면한 불확실성과 도전에 대응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개혁이 필요할 때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려는 정책과 신뢰, 협력과 단결이 필요합니다. 또한 부국강병으로 국가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힘과 국제 관계에서의 지혜로운 외교와 협력이 강조됩니다.
사회- 동학은 초대 교주 수운 최제우와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포교로 전국에서 존재했기에 전국적인 운동이 될수 있었습니다.
윤재민 자문위원님 이번 탐방을 통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윤재민 자문위원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사상으로 전국에 널리 포교 되었고 조선 전역에서 수없이 많은 동학 교도들이 동학농민혁명에 함께 들불처럼 일어섰습니다. 남접과 북접의 본산인 전라도와 충청도, 동학의 시초인 경상도, 동학농민혁명의 수많은 발자취가 남아 있는 강원도와 경기도에서 외세에 굴복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하늘로서 귀히 여겨지는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며 죽음으로 점철된 처절한 우리들의 역사입니다. 동학의 정신을 계승하고 후대에 전하려는 기념행사나 연구 사업들이 산발적이고 지자체 개별적으로 많이 진행되었고 나름의 성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더하여 동학농민혁명의 큰 틀에서 국가적 기념일과 행사가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그 의의를 다시 한번 온 국민이 함께 되새기는 날로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시는 이 땅에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 기본인 국민주권이 무너지는 오욕의 역사가 위정자들로부터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사회- 동학혁명은 3대교주 손병희 시대에 독립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고개희 자문위원님 독립운동과 동학농민혁명의 공통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고개희 자문위원 여러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주요한 공통점은 ‘민중의 자각과 저항을 기반으로 한 사회 변혁의 추구’일 듯합니다. 두 운동 모두 당시의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체제에 맞서 민중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신분제와 봉건적 질서를 타파하고자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