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동학속으로] (18)강원 원주·홍천
김현종 · 2026-05-26 · 자유
우주가(宇住家) 한울로 한집이다
생명이 있어 사람이 사는 별나라가 우주 밖 어딘가에 또 있겠지만 인간이 대를 이어 찾아오는 사람들 단골집은 아마 지구인 것 같다 단군 석가 공자 마호메트도 지구촌 단골손님으로 왔다 다녀가셨고 지구 방명록에 이름을 새겨넣고 단골손님네의 등대로 어둠 밝혔다
대한민국은 일제 36년의 역사강점기와 32년의 군부 정치사를 쓰며 양극화 경제 성장, 민주화 32년 투쟁으로 국민 정서는 조급해졌다 입시 취업 중심 교육으로 청소년들의 정서는 지식경쟁에 시달렸고 학교에는 교안은 넘치나 습안이 없어 맞춤형 인성교육 절실해진다
불교 시대 진흥대왕은 서라벌 부인들에게 미륵 낳아달라 주문했고 미륵 아비 미륵 어미 되려 조심 조신으로 삼신할미에 공을 들였다 집집마다 미륵 아기 낳아 부처님 모시듯 한울로 생명존중 했었고 황룡사에 청소년 교육기관 만들어 세속오계 화랑 교육에 전념했다
유교 시대 세종임금 매월당 해동공자 출현을 대비 집현전 만들어 우리말 우리글 뜻 말 소리글 한글을 창제하여 백성에게 내어 줬다 천지인 삼합 하늘 땅도 사람이 본래 한울임을 스스로 깨달았기에 단군 진흥 세종 한국의 성군들은 백성을 지배치 않고 다스리셨다
대한민국은 지구촌 단골손님이 철마다 찾아오는 이승 단골집으로 우주가 내 집으로 함께 어울려 생명력 다듬고 한울로서 함께하자 저 높은 산을 베고 누워 창공의 흰 구름 한 가닥 끌어 이불 덮고 깊고 편하게 한잠 잔 후 소풍 마치는 날에는 온 곳으로 돌아가자
▲해월 최시형 강원도 원주에서 피체되다 동학 제2대 교조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은 동학의 토대를 만든 지도자다. 수운 최제우는 득도 후에 실제적인 포교 활동은 1년 남짓 곧바로 체포되어 순도하였다. 종통을 이어받은 해월은 수운의 유언 고비원주(高飛遠走)을 쫓아 깊은 산 속으로 은둔하였다.
태백산 속으로 숨어들었다가 영양의 용화동에서 수운의 남겨진 가족들을 챙기고 흩어진 제자들을 수습하여 다시 포교를 시작하였다. 동학의 뛰어난 사상과 해월의 인품과 성실함이 사회적 환경과 어울려 도인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나 이필제의 오판으로 영해민란에 연루되어 많은 도인들이 참살당했다. 해월은 다시 소백산 너머로 몸을 숨겨야 했다.
인제에서 동경대전, 단양에서 용담유사를 간행하였고, 산속에서 내려와 보은 장내리에 터를 잡았다. 교조신원운동을 주도했으나 실패하고 전라도에서 혁명의 불꽃이 타올랐다. 북접을 꾸려 전봉준과 합류했지만 대패하고 다시 쫓기는 몸이 되었다. 여러 곳을 전전하다 원주 송골 원진녀의 집에 머물렀다. 1898년 3월, 결국 송경인이 이끄는 경군 4~50명에 의해 피체 되었다. 그해 6월, 35년간의 고단한 삶을 교수형으로 마치니 그의 나이 72세였다.
▲ 동학의 현대 발현, ‘한살림(생활협동조합)’! 동학농민혁명의 발자취를 따라 원주에 당도했다. 원주에서 참으로 놀랍고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걸어 다니는 동학, 장일순’, ‘토지의 작가, 박경리’, ‘박경리의 사위, 김지하’. 한국의 장년층은 모두 알고 있을 법한 인물들의 연결고리다.
장일순은 1928년에 원주에서, 박경리는 1926년에 통영에서, 김지하는 1941년에 목포에서 각기 태어났는데 결국 그들은 원주에서 사상과 문학적 동지로 인연을 맺게 된다.
장일순은 동학의 사상을 통해 자신 작품에 사회적 문제를 반영하였고, 박경리는 동학의 인간 존엄성과 평등을 강조하며 ‘토지’ 작품을 썼다. 김지하는 자신 작품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강조하는 등 동학을 공부하여 각자의 작품 세계에 동학의 정신을 녹여 넣었다. 또한 피폐해진 농촌과 광산촌을 살리고자 강원도 일대에서 신용협동조합 운동을 전개하며 ‘한살림 운동’의 기금 조성을 위해 전시회와 강연을 진행한다.
장일순과 김지하는 ‘한살림’을 1986년에 설립하여 초기 원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한살림’의 설립 이념은 생명존중과 생태적 삶을 바탕으로 하며, ‘한살림’ 운동을 통해 농업의 가치와 생명의 중요성을 전파한다. 단순한 생협을 넘어 생명과 환경을 중시하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데, 이는 동학사상의 현대적 실천으로 볼 수 있다.
10여 년 전 우연히 친구를 통해 ‘한살림’ 회원 등록을 했는데 동학농민혁명을 돌아보며 걷는 걸음에 더욱 힘이 실리는, 매우 뿌듯한 연결고리다.
▲걸어다니는 동학 장일순과 제자들 무위당(無爲堂) 장일순[張壹淳, 1928~1994]은 동학사상의 철학과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동학의 가치를 재해석하여 생명 존중, 공동체 정신,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강조하였고, 이를 통해 오늘날의 사회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은, 무위당의 생명사상을 ‘나락 한 알, 밥 한 사발이 농민의 땀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이 일체가 되어 만들어진 것이며, 그와 같이 세상 만물이 순환적 상호의존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바, 곡식 하나, 돌 하나, 벌레 하나가 모두 한울님’으로 설명하고 있다. 장일순의 사상은 동학 제3대 교조 해월 최시형의 ‘이천식천(以天食天)’ 즉 ‘하늘이 하늘을 먹고 산다’와 닿아 있으며, 사인여천, 인내천의 사상으로부터 우주 만물의 상호 의존성으로 확장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장일순의 생명 사상은, 1977년 김지하 시인이 출옥한 후 장일순과의 대화록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생과 공존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제기되었고, 1980년대 들어와 본격화되었다. 장일순의 사상은, 혁명과 투쟁, 항쟁 패러다임의 사회운동을, 생명 존중, 공생의 사상과 이론으로 전환함으로써, 근대문명 극복을 위한 공동체성 실천으로 정립되어 간다. 1989년 ‘한살림 모임’이 창립되면서, 박재일, 최혜성, 서정록, 윤형근 등을 비롯한 ‘한살림’ 구성원들이 무위당의 사상을 실현한 실천가들이다. 국민가수 김민기가 당시 ‘한살림 모임’의 사무국장이었다.
원광대학교 박맹수 전 총장은, ‘해월 최시형’과 ‘동학’ 연구자로서 장일순과 ‘한살림 모임’의 발달 과정을 상세히 기억하는 연구자 중 하나다. 그는 무위당의 사상이 ‘한살림 선언’이며, 이것이 곧 ‘동학’의 실현이라고 말한다. 원주 ‘한알학교’, ‘한알마을’(대표 김용우)은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다’는 무위당 사상의 세대 전승 및 실천 공간이다.
우주 만물의 순환적 상호의존성에 기반한 장일순의 생명 사상은, 늘 자애롭고 따뜻하게 실천되었다. 모든 존재가 존재 그 자체로 한울님이며 그래서 모두가 겸손하고 따뜻하게 존재하는, 무위당의 사상은, 이름 없이 헌신하고 산화한 수많은 동학농민군, 생명 존중과 공생을 실천하는 이들의 삶 속에 엄연하다. 지구 환경에 적신호가 켜지고 지구를 살리기 위해 모든 국가가 공조체제를 형성해야 할 작금의 상황 속에서, 무위당 장일순의 사상은, 생명과 생태를 살리고 공생으로 나아가야 할 지구 환경의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동학 독립운동으로 승화되다. 1860년 최제우가 깨달음을 얻어 시천주 사상을 기반으로 동학을 창시하였는데 후천개벽으로 인간이 어떠한 차별도 없이 평등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신분제의 해체와 반외세 사상으로 조선에 큰 격변을 불러왔다. 교조를 처형했어도 삶의 질곡에서 신음하던 민중의 결집은 교세의 확대로 이어졌다. 1894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못이긴 민중들이 전봉준을 중심으로 동학농민혁명의 기치를 올렸다. 왕조의 타도보다는 탐관오리의 처단과 외세를 물리치자는 명분을 앞세웠다. 진압군이 무너지며 청군을 불러들이자 천진 조약에 의해 일본군도 파병을 감행하였다. 경복궁에 난입해 정권을 유린하고 급기야 조일 연합군을 편성하여 농민군을 와해시킨 후 지도부를 체포하였다.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이 영향으로 국내에서는 일본의 강요로 갑오조치를 실시하였고 국외에서는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미국의 중재로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여 승전한 일본이 거액의 배상금과 요동 할양을 받았지만 이를 용납하지 못한 러시아가 불, 독 등 삼국간섭을 일으켜 반환시켰다. 이듬해 국내에서도 세력이 약화된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을 일으켜 친일내각을 수립하였다. 불을 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