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동학속으로] (15)경주·울산
김현종 · 2026-05-26 · 자유
천지인 삼합 정신이 이끄는 동학의 길 단군신화는 하늘과 땅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깊은 삶의 지혜 전해주며 하늘의 조화, 땅의 교화, 인간 치화다 동학은 모든 존재가 평화로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이런 정신은 신화를 넘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홍익 가치다 우주 만물은 서로 특성과 궤도를 존중하며 조화로운 존재로 우리는 대자연의 질서를 배우며 서로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공동체 속에서 대자연이 가르쳐주는 공존의 원리는 사람과 자연의 관계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근본적인 지침이다 우리 역사의 분단은 단순한 갈등이 아닌 통일을 향한 민족적 의지를 꾸준히 이어온 과정으로 고대 삼국 통일과 남북국의 시대적 여정은 영토를 넘어 민족의 화합을 이루기 위함이다 숭고한 소명으로 통일의 열망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과제다 고려의 개국이념인 통일에 대한 염원을 오늘날에 되새기고 천지인 삼합 정신과 찬란한 역사로 후손에게 자부심을 주자 미래를 향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며 홍익으로 나아간 길은 동학 인내천의 소중한 유산으로서 역사시대 절실히 요구된다 천지인 삼합 정신은 하늘 땅 인간의 조화를 통해 인류통합을 이룬 위대한 개국이념이며 고대 선각자들의 절대 가르침이다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시대를 초월한 선진정신을 다시금 되살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최제우교주 노비를 양녀,며느리로 받아들이다 동학의 창시자인 수은 최제우선생은 1824년 12월 18일, 조선 경상도 월성군 현곡면 가정리에서 몰락한 양반 가문의 자손으로 출생했다. 제우(濟愚)라는 이름은 어리석은 세상 사람을 구제하겠다는 결심을 다짐하기 위해 스스로 고친이름이다.
31세까지 10년 이상 조선의 각지를 유랑하며 유불선(儒佛仙) 삼교, 서학(西學), 무속(巫俗)등 다양한 사상을 접하는 동시에, 당시 서세동점과 삼정문란(三政紊亂)이라는 이중의 위기에서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참담한 생활을 직접 체험했다.
최제우 선생의 기본적인 사상을 나타내는 것은 시천주(侍天主)이며 이는 한울님을 내 몸에 모시고 받든다는 의미이며 모심은 곧 살아계시는 것을 섬김이다. 사인여천(事人如天)이란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한울이니 사람 받들기를 한울님 섬기듯 하라는 의미이다.
모든 사람이 한울님으로 받들고 모시며 귀히 섬겨야 하는 동학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시니 바로 여자 노비 2명을 해방하고 며느리와 수양딸로 삼은 것이다.
당시 철저한 신분사회이자 계급사회였던 조선에서 최제우선생의 이러한 파격적인행보는 사회의 기본질서와 체계의 근간을 흔들만한 위험천만한 행위였다. 노비라는 신분제도의 철폐는 인간존엄과 평등사상을 실천함과 동시에 현재의 어지럽고 고통받는 시대인 선천이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대접을 받고, 참다운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물질적 풍요가 성취될 후천이 시대가 열리니 그것은 죽음 이후가 내세가 아니라 현재 살아 있는 현세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후천개벽사상이다. 동학이 내세를 지향하는 타 종교보다 더욱더 현 세상을 바꾸려는 적극적인 개혁종교이자 실천종교였다.
▲수은선생 울산 여시바윗골에서 깨달음을 얻다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선생은 경주 최부자집 최진립의 7대손이다. 아버지 최옥은 당대 최고의 학자였으나 어머니는 재가녀(再嫁女)였기 때문에 수운은 서자였다. 19세에 울산 출신 월성 박씨와 결혼을 하였지만 생활이 곤궁했다.
의술이나 점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수운은 훈장을 하기도 하고 장사를 하면서 10여 년간 전국 각지를 유랑했다. 이때 피폐한 백성들의 삶과 풍전등화인 나라의 운명을 체휼했다. 이에 수운은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안정케 할 혁명적 변화 “개벽”을 꿈꾸게 되었다. 개벽을 위한 천도(天道)를 얻기 위한 수행에 들어갔다.
부인 월성 박씨의 고향인 울산 태화강 건너 유곡동 여시바윗골에 초가를 짓고 수련에 정진했다. 1855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온 신령한 스님으로부터 해독(解讀)되지 않는 책을 받고 공부 끝에 해독하여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데 이를 “을묘천서(乙卯天書)”라 한다. 이후 수련의 중심은 기도가 되었다. 내원암과 적멸굴에서의 49일 기도 등 수행 정진을 거듭했다. 다시 경주 용담정으로 돌아와 수련을 계속 한 후 1860년 4월 5일, 드디어 종교체험을 통해 대오각성(大悟覺醒)하여 무극대도(無極大道) 동학(東學)을 개창했다.
▲용담정(龍潭亭)의 깨달음,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용담정은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의 종교적 체험지이자 동학의 발상지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경주시청에서 북서쪽 8km 지점 가정3리 버스정류장에서 구미산(594.6m) 방향으로 수운기념관, 동학기념관, 용담수도원을 지나 용지골 안에 위치한다. 수운이 태어난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314에서는 들녘 너머 약 2km 지점에 해당한다.
최제우는 37세(1860년 4월 5일)의 나이에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누구나, 지극한 기운이 지금 이 자리에 내리기를 간절히 원하면 한울님과 조화롭게 합치될 수 있으며, 그 마음을 영세불망토록 보존하면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 수 있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는 이후, ‘사람을 하늘처럼 모시라(사인여천 事人如天, 2대 교주 최시형), 사람이 곧 하늘이다(인내천 人乃天, 3대 교주 손병희)’라는 외침의 출발점이 된다.
인과 예를 기본으로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법도가 엄격한 유교 사회 조선에서 그의 가르침은,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백성을 현혹하는 좌도난정(左道亂正)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가 되어, 수운은 결국 1864년 대구 관아에서 효수형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신분 차별과 폭정에 시달리던 조선의 백성들에게 시천주, 사인여천의 가르침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하는 힘이 되었다.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잡아 백성을 편안케 하고(보국안민 輔國安民), 폭정으로부터 백성을 구하며(제폭구민 除暴救民), 외세를 몰아내고(척왜양 斥倭洋) 자주 국가를 꿈꾸었던 동학농민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정치인과 관리들이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며, 나라를 도와 백성을 편안케 하고, 세계와 화합하여 자주 국가를 세우자는 요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에도 얼마나 중요한 주문인가.
▲수운 최제우 사상의 위대함 조선 후기의 사회상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지도층인 세도가가 왕실과 공모하여 민중 수탈이 극에 달했고, 가진 자들은 서원이나 향교에 이름을 적어 넣어 군대에 가지 않았으며, 부농층은 탐관과 결탁하여 세금을 내지 않았다. 몰락한 양반들은 향회를 주도하며 민란을 일으키니 들불처럼 번져갔으니 이런 상황에 최제우는 몰락해 가는 민중에 희망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수운 최제우는 조선후기 시천주(侍天主)의 교리를 중심으로 한 동학을 창도한다. 몰락양반가 출신으로 세상의 어지러움을 밝히기 위한 구도와 수련에 전력을 다하던 중 1860년 세상 이치를 체득하고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하느님을 모신 존귀한 인격’이라는 시천주사상은 피폐해진 민생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듯하다.
수운 최제우는 1860년에 동학의 원리를 깨치고 1863년 12월에 체포되기까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완성했다. 그는 예수가 활약한 기간보다 짧은 기간에 직접 포교하고 책을 쓰면서 후계자까지 정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나간다. 유교 원리주의자는 수운 최제우가 서학을 퍼뜨리는 자로 유학자의 세상을 끝내려하고, 동학으로 천민과 여자들까지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 의도를 곡해했다.
학문으로 시작된 동학을 말할 때 ‘동학을 한다.’, ‘동학을 실천한다.’라고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학문을 하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수운 최제우의 생애와 사상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인기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인 예천 초간정에 올라서니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에 힘이 붙는다.
▲동학 사상 19세기 후반의 조선왕조는 조세 부담, 토지 문제, 농민 착취 등 경제적 어려움과 지배층의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