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독립운동 속으로 시리즈
행정으로 본 서대문형무소
박유담 · 2026-08-25 · 신지식 청년사관
서대문형무소 탐방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지식의 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지식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즉, 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그들이 살아온 세계에 따라 아는 만큼 보이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이에 조금은 독특하고 다양한 해석을 제공하고자, 배워온 행정학과 법을 바탕으로 한 탐방기를 쓰고자 한다.
행정을 쉽게 정의하면,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공공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행정은 2가지 핵심축인 효율성과 민주성을 기준으로 작동한다. 효율성은 비용 대비 편익의 극대화와 완성도를 강조하는 경제학적, 도구적 가치이다. 이와 달리 민주성은 문제해결 과정에의 시민의 참여와 연대를 강조하는 목적적 가치이다.
역사적으로 1980년대 신공공관리론이 그랬듯, 행정은 종종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왔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서대문형무소는 최고의 행정기구로 평가할 수 있다. 중앙사를 축으로 옥사가 부챗살처럼 뻗어나가는 방사형 배치는, 최소한의 간수로 최대한의 수감자를 감시하기 위한 설계다. 대표적으로, 파놉티콘의 원리가 적용되었다. 감시받는 자가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드는 순간, 통제 비용은 극적으로 떨어진다. 투입 대비 산출로만 따지면 이보다 뛰어난 설계는 찾기 어렵다. 또 다른 특징인 문서주의도 마찬가지다. 전시실에서 마주한 수천 장의 수형기록카드는, 한 사람의 삶을 이름·나이·죄명·사진 몇 칸으로 환원해 놓은 문서였다. 베버가 말한 관료제의 몰인격성이란 게 바로 이것이다. 담당자가 누구든 동일한 결과가 나오도록 인간을 규격화하는 것. 효율의 관점에서는 표준화의 효과적 성취이다.
법적 관점에서 서대문형무소가 무서운 점은, 모든 것이 '합법'이었다는 사실이다. 조선태형령, 보안법, 치안유지법. 고문과 구금은 무법의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촘촘한 법령의 이름으로 집행되었다. 법의 지배와 법에 의한 지배는 사소한 차이지만, 전자는 권력을 통제하는 수단이고 후자는 권력이 휘두르는 몽둥이다. 서대문형무소는 후자의 대표격이다. 법이 목적을 잃고 수단으로만 남을 때, 법은 폭력의 근거가 된다.
앞서 행정을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과정이라고 정의 내렸기에, 그 주체가 대개 국가만 해당한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가는 모든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그 결과 시민들의 참여와 연대가 중요하게 작동하기도 하는데, 이를 시민참여와 거버넌스라고 한다. 독립운동가들의 연대와 노력들은 바로 그 사례다. 국가 폭력에 의한 문제와 국가가 부재한 상황에서 닥친 공공의 문제를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기에, 시민들이 문제해결의 주체로 등장한 모범적이고 헌신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결국 같은 건물을 보더라도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보인다. 효율성만 놓고 보면 서대문형무소는 잘 설계된 행정기구이고, 민주성을 놓고 보면 그것을 무너뜨린 사람들의 기록이다. 행정은 하나의 억압을 위한 도구로 작용할 수 있고, 동시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도 볼 수 있다.
나라를 위한 순국선열들의 헌신을 보면, 나라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하나의 어구가 떠오른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나라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는 것으로, 그들이 지켜낸 이 나라를 사랑한다고 갈음하며 위안을 가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