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독립운동 속으로 시리즈
서대문형무소를 다녀오며
안윤형 · 2026-08-24 · 신지식 청년사관
이번 주는 붉은 벽돌 담장 너머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아픔이 서린 곳,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았다. 관람 동선을 따라 마주한 것은 일제가 우리 국민에게 자행했던 끔찍한 고문의 흔적과 빛 하나 들지 않는 서늘한 철창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구금 장소 바로 옆에 취조실을 배치해, 옆방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고문 소리만으로도 극도의 공포를 느끼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구조였다. 들여다본 취조실에는 나무 형틀에 단단히 고정된 쇠고랑과 함께 채찍, 몽둥이 같은 고문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실감하며 깊은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무거운 분위기는 관람 동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마음을 짓눌렀다.
지하 고문실을 나와 옥사로 이동해 실제 수감 생활이 이루어졌던 공간을 둘러보았다. 간수가 한눈에 복도 전체를 감시할 수 있도록 설계된 부채꼴 구조는 공간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위압감을 주었다. 한기만 감도는 텅 빈 감방, 안에서는 밖을 전혀 내다볼 수 없는 철저한 폐쇄성, 여기에 관람 당일 내린 비로 인한 눅눅한 습기까지 더해지니 피부로 전해지는 답답함이 상당했다. 난방은커녕 최소한의 온기조차 기대할 수 없던 차가운 마루 위에서, 수감자들은 벽을 두드리는 소리로 겨우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다고 한다. '과연 나라면 이런 극한의 고립과 환경 속에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옥사를 벗어나 야외로 나오니 수감자들의 강제 노역과 통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작사와 격벽장이 눈에 들어왔다. 공작사는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군수용품 등을 생산하던 곳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어진 가혹한 노동의 무게가 전해졌다. 밖에 나가 인도를 보면 붉은 벽돌이 일렬로 이어져 있다. 자세히 보니 이곳 공작사에서 생산한 ‘경( 京) ’자가 붙은 벽돌이었다. 자기가 만든 벽돌로 자기가 갇힐 이곳을 완성하는 기분은 과연 어땠을까. 이어 마주한 격벽장은 수감자들이 운동할 때조차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부채꼴 모양으로 칸막이를 세워둔 기괴한 공간이었다. 햇볕을 쬐는 짧은 자유시간마저도 철저한 감시와 통제 아래 두려 했던 일제의 치밀하고 집요한 탄압 방식에 소름이 돋았다.
마지막으로 발걸음이 닿은 곳은 동선 끝자락에 위치한 사형장이었다. 외벽부터 짙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겨 마주하는 순간 절로 말문이 막혔다. 어두컴컴한 공간 속 천장에 위태롭게 매달린 밧줄과 낡은 의자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그곳이 지닌 죽음의 공포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 사형장 뒤편에는 일제가 고문과 구타의 흔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몰래 빼돌렸던 시구문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죽어서조차 온전히 나가지 못했던 선열들의 처지를 마주하니 가슴 깊은 곳에서 먹먹한 분노와 답답함이 차올랐다.
서대문형무소를 나서는 길,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과 자유가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묵묵히 고통을 견뎌낸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마음 깊이 되새기며, 이 역사를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