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독립운동 속으로 시리즈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탐방 소감문

정세현 · 2026-08-23 · 신지식 청년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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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아카데미 2차 기행으로, 중학교 시절 현장학습 이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오랜만에 찾게 되었다. 머리가 크고 나서 다시 마주한 옥사와 시설들은, 지난 방문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장소를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오게 했다. 시작부터 일제가 한국민의 저항 의지를 근절함으로써 식민 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 아래 개소된 서대문형무소는 한국의 근현대사 속 수많은 인물들이 매우 고통스럽고 오랜 투옥 생활을 견뎌야 했던 공간이다. 내가 이 공간에서 사유하며 무엇보다도 주목한 점은 서대문형무소의 입지였다. 사대를 청산하고 자주국권으로의 새출발을 다짐하며 세워진 독립문 바로 옆에 형무소가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한국인들에게 일제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기에 앞서 '독립 한국'이라는 관념 자체를 부정하고 한민족의 자존을 조롱하려 한 의도로 다가왔다.

일제는 식민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저항 세력을 감금하고 탄압할 시설을 필요로 했고, 서대문형무소 외에도 전국 각지에 크고 작은 감옥을 설치하였다. 1920년대에는 전국에 걸쳐 평균 30여 개소에 달하는 형무소가 운영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상 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감옥으로 전환시킨 것과 다름없었다. 전국 형무소 배치도를 직접 목도하면서, 내가 자라온 전북에도 일제가 한민족의 저항을 묵살하며 선조들을 대상으로 고문과 악행을 자행한 자리가 뚜렷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광복 이후에도 서대문형무소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국권을 되찾은 뒤에도 한동안 독재 정권 아래에서 정치범을 감금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다시 이용되었다. 식민 지배의 폭력을 견뎌낸 공간이 곧이어 동족에 의한 억압의 무대로 재현되었다는 사실은, 해방이 곧바로 완전한 자유와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현대사의 뼈아픈 단면을 드러낸다.

어두운 시절을 지나온 서대문형무소는 현재 일제강점기 아래 온몸을 바쳐 투항한 애국지사들의 넋을 기리고, 억압에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의 정신까지 함께 되새기는 역사관으로 재탄생했다. 백 년도 더 지난 과거의 사람들이 독립문을 건립하며 보내온 소망이 오늘날 현실로 다가와 나에게 전달되기까지. 나는 이 날의 탐방으로 시간이 흘러온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독립투사들의 희생을 마음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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