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독립운동 속으로 시리즈
2회차_서대문형무소_윤서원
윤서원 · 2026-08-23 · 신지식 청년사관
“대한민국은 내 목숨이다”
우석대학교 약학과 윤서원
붉은 벽돌의 서대문형무소는 부패한 관료층이 나라를 팔아넘길 때 스스로 일어나 목숨을 바친 깨어난 민중들의 피가 서려 있는 곳이다. 독립문역 3호선에 위치한 서대문독립공원의 3.1독립선언기념탑 앞에는 승병일 지사의 풋프린팅 조형물이 놓여 있었다. 그 조형물에는 “대한민국은 내 목숨이다”라는 절규가 새겨져 있었다. 이번 8월 20일자의 탐방에서 국가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지사들의 결의와 치열했던 항일독립 전쟁의 정신을 가슴 깊이 되새기고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가 지은 서대문형무소의 바로 옆에는 조선이 청나라에 대해 자주 선언을 외친 독립문이 위치하고 있다. 1897년 우리는 서재필 지사의 제안과 독립협회 주도의 국민 모금을 바탕으로,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허물고 화강암으로 아치 모양의 독립문을 세웠다. 이는 “조선은 더 이상 속국이 아니다”라는 자주 선언이었다.
그러나 자유를 선언한 독립문에서 바로 옆에 일제는 1908년 민족의 저항을 꺾기 위한 서대문형무소를 지었다. 1908년 500여 명 수용 규모로 시작해 3.1 만세운동 이후 30배 규모(51,200 ㎡)로 증축되었고, 4만여 명의 독립운동가가 이곳에 붙잡혀 왔다. 스스로 일어나 일제와 당당히 맞서 싸운 지사들이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숭고한 저항의 이면에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국가는 가차 없이 짓밟힌다는 국제 정치의 비정함이 서려있다. 백성을 지킬 국력이 없을 때 자주를 외쳤던 독립의 돌문은 순식간에 철창 감옥의 그림자에 가려지고 만다. 자주 선언만으로 채울 수 없었던 국력의 공백은 고스란히 붉은 벽돌 감옥이라는 혹독한 결과로 돌아왔다. 서대문형무소의 차가운 지하 독방과 고문실은 힘 없는 국가의 백성이 치러야 하는 가장 뼈아프고 슬픈 역사였다.
서대문독립공원에 동상으로 서 계신 서재필 지사는 “백성이 나라 형편과 세상 일을 알고 바로 서야 한다”라는 신념으로 최초의 순 한글 민간지 ‘독립신문’을 창간한 전남 보성 출신의 개화 사상가이다. 국민이 스스로 깨어나야 진정한 독립을 할 수 있다는 사상이었다. 어쩌면 그가 외친 “백성이 곧 나라”라는 구호야말로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뿌리이자, 우리의 정체성을 담은 문구가 아닐까 한다.
펜은 부패한 권력의 안일함을 고발하고 민중을 깨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러나 “백성이 곧 나라”라 외치며 근대 시민의식을 심었던 독립신문의 창간호, 그리고 서재필 지사의 정신이 담긴 설명판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텍스트의 절반 가량이 탈색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육안으로 읽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그 마모된 안내판은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아픈 단면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번영과 평온한 일상은 치열했던 항일 독립 전쟁의 피와 땀 위에 서 있다. 풍화되어 가는 역사의 기록을 선명하게 닦아내고, 각자의 자리에서 전문성과 책무를 다하여, 스스로를 지켜낼 단단한 국력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붉은 벽돌집에 청춘을 묻은 선열들의 절규 앞에서 우리가 져야 할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