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독립운동 속으로 시리즈

2회차_서대문형무소_송가연

송가연 · 2026-08-23 · 신지식 청년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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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비가 내리는 오후에 방문한 서대문 형무소. 처음 방문하는 것이었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선조들이 울었던 건물의 바닥을 이 시대에 사는 내가 밟을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정갈하게 벽 하나를 가득 채운 독립운동가들의 인상착의들과 검고 깔끔하게 페인트 칠이 되어있는 편지 작성소를 보며 이 시대에 사람들이 그 정신을 이어가게 하기 위해 얼마나 세세한 노력이 필요 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서대문 형무소를 둘러보며 가슴을 울렸던 부분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터무니 없이 좁아 사람 하나가 겨우 눕고 사람 이외엔 아무것도 놓일 수 없는 크기의 독방이 비오는 날의 날씨에 이기지 못하여 가뜩이나 답답한 그곳의 공기가 습기에 한껏 눌려있었다.

또 느꼈던 것은 그곳의 철저한 폐쇄성이다. 높게 지어진 형무소의 천장을, 독립운동가들은 볼 수 있었을까. 몇몇은 그 안에서 수많은 날들을 자신들의 독방 위 복도에 누가 걸어다니는 지도 모르는 채 그저 귀 기울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 잔인함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담은 ‘항거’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좁디 좁은 방 안, 서로 이름도 알지 못하는 여성들이 부르던 옛 노래. 그들은 그 노래를 자신들 뿐만이 아니라 옆 방에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 같은 뜻을 가진 누군가를 위해서도 불렀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며 과거에 보았던 작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지독한 폐쇄성은 그 외의 공간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당시 일본군들이 정해놓은 ‘운동장’이었다. 처음 그 곳을 발견하고 설명을 읽었다. 수감자들의 외부 활동, 건강을 유지하고 햇빛을 쐬게 하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쓰여있었지만 그 공간 안에 들어가자 놀라움과 동시에 운동장이라고 믿으며 끌려간 독립운동가들의 절망의 일편을 조금이나마 느낀 것 같다. 운동장이라고 만들어진 곳 주위엔 온통 질리도록 봤을 붉은 벽돌 투성이였다. 걸을 수 있게 일직선으로 5개의 길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 끝은 막다른 길. 그 길마저 100미터도 되지 않는 길이로, 마치 죽지는 않도록 사람을 햇빛에 잠시 넣었다가 빼는 듯한 그 기만적인 공간에 말문이 막혔다. 그 다섯 개의 붉은 복도가 수감자를 감시하는 높은 위치에서는 하나의 손바닥처럼 보여서, 햇빛을 쐬러 나온 그 찰나마저 일본군의 손 위에 있다고 하는 것 같아 굴욕적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난 후 발견했던 것은 선조들의 소지품이었다. 하나하나 사용의 흔적이 남아있었으며 하나하나 누구나 일상적으로 사용했을 것 같은 물건들 뿐이라 그 공간이 멈추게 한 그들의 일상이 더 소중하고 애절하게 느껴졌다. 공중 전화카드, 동료에게 받은 안경, 만년필, 연설을 기록한 카세트 테이프, 십자가. 멀리 있는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그 안에서도 동료의 정을 느낄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다지기 위해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신에게 부탁하고 싶었던, 위대하지만 평범했던 사람들이다.

서대문 형무소를 둘러보며 평범한 이들이 위대해지기까지 어떠한 시련을 겪었는지 그들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문을 넘고서야 비로소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국대학교 송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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