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독립운동 속으로 시리즈

2회차 서대문 형무소와 독립문을 탐방하며 _최지한

최지한 · 2026-08-22 · 신지식 청년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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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사학과 최지한

2026년 8월 22일 여름의 소나기가 지나가는 날에 서대문 형무소와 독립문을 방문했다. 서대문 형무소 정문 입구를 향해 걸어가면서 서대문 형무소의 벽은 유난히 답답하게 느껴졌다. 들어가기 전에 본 형무소의 붉은 벽돌은 이곳에서 고문 당해 죽거나 후유증을 얻은 사람들의 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답사 시작 전, 자연스럽게 마음이 무거워지고 차분해졌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먼저 바로 앞에 있는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독립 운동에 대한 내용과 서대문 형무소의 구조가 전시되어있었다. 그리고 당시 독립 운동가들을 어떻게 심문하고 고문 했는지 나와있었다. 개인적으로 실물 모형으로 만들어진 고문 장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구겨지고 마음 속에 돌 하나가 생긴 느낌이었다. 물 고문 뿐 아니라 관 같은 곳에 집어넣고 계속 서있게 가둬 두는 상자 고문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이런 심한 짓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시관을 둘러본 후에는 실제 독립 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옥사를 둘러보았다. 예전에 익산에 있는 교도소 세트장을 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곳보다 더 심하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실제로 사용된 곳이라 당연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당시 수감되었던 사람들의 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천천히 당시 쓰던 수용소 방 내부와 설명을 읽으면서 몰랐던 내용도 많이 알게 되었다. 오기 전에는 이곳이 일제 강점기 시절에만 독립 운동가들을 고문하고 가둔 형무소로만 알고 있었는데 해방 후에도 계속 운영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민주화 운동가 분들도 이곳에 갇히고 고생했다는 점을 전혀 몰랐다. 설명에는 1987년이 되서야 철거됐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런 곳은 해방 후엔 바로 철거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상상도 못했다. 지금 우리가 편하고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것도 계속 투쟁해온 분들 덕분이라는 것을 느끼며 옥사를 나왔다.

옥사를 나온 후에는 옆에 있는 공작사에 들어갔다. 당시 수감되었던 수감자들의 얼굴을 모아 놓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담긴 공간이었다. 나를 포함한 답사객 모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모아 놓은 공간이었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끔찍한 일은 모두가 그 사람에 대해 잊고 기록 속에서도 잊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기억해준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공간을 돌아보며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았구나 싶으면서도 그들이 한 숭고한 행동들 만큼은 절대 잊지 않고 계승하고 싶었다. 다시는 과거에 나라를 잃었던 그 슬픈 기억이 미래에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 후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 뒤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수감되었던 한센병사와 사형이 집행되었던 사형장을 둘러보았다. 당시엔 한센병이 치료 불가능한 불치병으로 취급 받았다는데 열약한 감옥 생활 속에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그저 슬프고 씁쓸했다. 사형장은 가장 구석에 있었는데 답사객들도 거의 없는 이 공간에서 나는 어쩐지 서늘함과 무서움을 느꼈다. 이곳에서 독립 운동을 하다가 사형을 당하신 분들은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생애 마지막 순간을 감옥에서 보낸다는 게 얼마나 두려웠을까

서대문 형무소 관람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독립문을 보러 갔다. 가는 길에도 유관순 열사와 3.1 독립선언 기념탑 동상도 보였다. 독 립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걸어 다니며 자세히 설명을 들으며 탐방하는 재미가 있어 좋았다. 독립문이 어떤 자리에 지어졌고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당시 우리나라에 대한 자주독립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사적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무사히 남아 그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또 독립문은 서재필 선생님이 지은 걸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완용이 이걸 만든다고 후원도 했다는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엔 아직 친일파가 아니고 고종에 충성을 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 뒤 행적 때문에 다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엔 아직 고종에게 충성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독립문과 관련된 다양한 생각을 하며 탐방을 마쳤다. 이번에 처음 역사 탐방에 참여했는데 설명을 듣고 내가 스스로 움직이며 설명을 들으니 책에서 본 것보다 더 실감나고 기억에 남았다. 앞으로도 자주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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