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차_안중근의사기념관_조현희
조현희 · 2026-08-21 · 신지식 청년사관
존경이라는 말 앞에서
동국대 조현희 내가 감히 그를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돌아보는 내내, 그 질문이 발치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를 몰랐다. 교과서에서 이름 석 자를 보았고, 1909년 하얼빈이라는 사건의 좌표를 외웠을 뿐이다. 하지만 활자로 아는 것과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아득한 거리가 있었다. 그가 밤마다 품었을 두려움, 사랑하는 이들의 온기를 뒤로하고 걸어야 했던 그 마음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날 나를 그곳으로 이끈 건 장학생 선발이라는 작은 우연이었다. 살아온 모습도, 품은 꿈의 색깔도 저마다 달랐지만 역사를 향한 이들의 눈빛만큼은 닮아 있었다. 그 진지한 시선들 앞에서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역사를 안다고 믿었던 것은 몇 개의 이름과 몇 줄의 사건을 외우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걷다가 한 문장 앞에 멈춰 섰다. 역사는 미래를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그러나 곧 다른 생각이 따라왔다. 나침반도 결국 누군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역사 역시 누군가의 시선과 기억을 거쳐 우리에게 도착하는 것이 아닐까. 완성된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뒤에 사라져 간 것들까지 헤아려보고 싶어졌다. 질문의 끝은 과거가 아닌 나 자신을 향했다. 만약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조국의 이름을 부르며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타인의 위대함 앞에서 쉽게 존경을 말한다. 그러나 그의 선택을 나의 삶으로 가져오는 순간 존경은 두려움이 된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다면, 내가 택한 길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면. 나는 몇 번이고 망설였을 것이고 끝내 고개를 돌렸을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인정하는 일이 가장 아팠다. 거목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일보다 그 거목과 나 사이의 거리를 직시하는 일이 괴로웠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 태어날지, 어떤 순간에 선택의 기로에 놓일지 알 수 없다. 수많은 우연이 겹쳐 오늘의 나를 만든다. 하지만 그 우연이 도착한 뒤 어느 방향으로 걸어갈지는 나의 몫이다. 역사가 남기는 것은 과거의 정답이 아니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계속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 내린 작은 선택 하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한 사람의 역사로 남을 수 있다는 것. 나는 아직 그들이 품었던 긍지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부끄러움을 잊지 않으려 한다. 무지를 깨닫는 순간이야말로 시야가 넓어지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기념관을 나서며 처음의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그를 존경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여전히 답은 알 수 없다. 다만 이제는 그 말을 가볍게 입에 올리지 않기로 했다. 존경한다고 말하기 전에 그의 선택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보고 싶다. 그날 나를 그곳으로 이끈 건 작은 우연이었다. 그러나 그 우연을 무엇으로 남길지는 결국 나의 선택일 것이다.